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구름 Jul 12. 2017

택시운전사, 역사를 운반하다

column review

Intro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관객들의 가슴을 느리지만 진득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여운과 깊이는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한층 깊어진다.


송강호라는 이름의 무게

최근 충무로는 남배우 풍년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남자 배우들이 많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를 보고 난 후 송강호는 좋은 연기의 특이점 그 어딘가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영화에 별 4개를 준다면 그중 3개는 송강호의 차지다. 그가 연기하는 택시운전사는 참으로 특별할 것 없는 캐릭터다. 정의감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며 존경받지 못하는 씁쓸한 가장의 모습, 한국 영화 그 어디에서라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적당한 캐릭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송강호가 그 캐릭터를 입었을 때는 달랐다. 서울시내 도처에 깔려있는 순댓국집, 그중에서도 가장 진하고 맛있고 놀라운 순댓국을 만난 것 같은 느낌. 그토록 평범한 캐릭터에서 이만큼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송강호의 감정은 고스란히 스크린을 빠져나와 관객들의 가슴에 스며든다. 그렇게 한 명의 평범한 택시운전사는 아주 특별한 택시운전사가 된다.

송강호


유려하게 흘러가는 감정선

<택시운전사>의 서사는 이야기가 흘러간다기보다는 감정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오프닝에서 주인공 김만섭과 함께 시작되는 경쾌한 감정이 광주로 이동하며 비참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거쳐 끝내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의 흐름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함께 움직인다. 장훈 감독은 애써 설명하거나 서술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등장인물들의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 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1980년 5월의 순간들을 묘사한다. 이런 불친절한 연출이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송강호를 필두로 유해진, 류준열 등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조연진들의 역량이 주요했다고 생각된다.

감정선


미술팀과 음향팀의 활약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특별히 훌륭한 미술팀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택시운전사>는 80년의 서울과 광주, 그리고 복장과 소품들을 만들어내고 배치하는 것에 상당히 공들인 흔적들이 돋보인다. 민간인부터 군인, 서울 시내 곳곳과 광주의 다양한 공간들을 선보이는 영화는 꼼꼼한 미술팀의 작업에 힘입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경을 선보인다. 한편 중요한 장면마다 과감하게 사용되는 음향효과와 OST는 대부분 화면과 좋은 조합을 선보이며 관객들이 영화에 한층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흔적


운반되고 살아남은 역사

이처럼 좋은 배우진과 좋은 이야기가 있음에도 <택시운전사>는 역시나 한국 영화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감정을 복받치게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들로 점철된 시퀀스부터 누가 봐도 서사의 개연성에 흠집을 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몇몇 장면들은 더욱 완벽해질 수 있었던 영화에 아쉬움을 남기게 만든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운반되고 살아남은 역사에 대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얘기하는 영화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체로 담백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 송강호와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영화의 메시지는 단점도 덮을 만큼 강력하게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파이더맨: 홈커밍, 모두가 원했던 마지막 퍼즐 조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