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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l 21. 2017

덩케르크, 조용하고 사색적인 전쟁영화

column review

Intro

도전적인 실험들은 항상 리스크를 동반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첫 전쟁영화, <덩케르크>는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고 기존 전쟁영화의 클리셰를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독특하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로 탄생했다.


얽히는 시간 속 마주하는 인물들

영화는 크게 지상, 바다, 하늘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는다. 그리고 각 인물들이 머무는 시간의 속도는 같지만 길이는 다르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인물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각자의 시간을 달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놀랍다고 생각한 지점은 인물 간의 시간이 엇갈리게 배치되었음에도 그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어우러지며 이야기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서사의 구조 덕분에 <덩케르크>는 일종의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듯하면서도 일반적인 극영화의 흐름 또한 엿보이는 독특한 전쟁영화가 되었다.

마주하는


영웅, 없거나 혹은 전부이거나

<덩케르크>에는 여느 전쟁영화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영웅을 찾기 힘들다. 정확히는 감정을 이입할 뚜렷한 주연배우조차 없다. 영화에는 매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도움과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는 최소화되고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 현장과 순간의 상황,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대상을 잃어버린 관객들은 일종의 지루함을 경험하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에 펼쳐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덩케르크의 상황을 묘사하는 영화는 캐릭터를 희생함으로써 한 명의 해결사를 선보이기 보다 다양한 인물들의 노력과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들


연출이 만드는 긴장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의 연출 스타일이 빠른 화면전환과 동적인 캐릭터들이 존재할 때만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증명한다. 전쟁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정적이고 조용한 연출이 주를 이루는 <덩케르크>는 디테일한 소리와 사실적인 장면들로 시종일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퀀스가 주를 이루는 영화는 비행기와 배를 활용한 담백하고 수준 높은 연출로 최근에 개봉한 어떤 전쟁영화보다 현실적인 전장을 재현한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뛰어난 현실성을 두루 갖춘 <덩케르크>는 좋은 티백에서 깊은 차가 우러나오듯 전쟁영화 특유의 순도 높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긴장감


새로운 전쟁영화

<덩케르크>는 '재미있다'고 말하기 애매한 영화다. 하지만 '멋있는'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정적이고 사색적인 장면들이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집중해서 놀란이 숨겨놓은 디테일과 화려하진 않아도 사실적인 시퀀스들을 음미한다면 <덩케르크>는 분명히 새롭고 흥미로운 전쟁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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