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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Sep 08. 2017

아이 캔 스피크, 눈물이 나는 이유

column review

Intro

흥행과 별개로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관객들이 아쉽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요즘, <아이 캔 스피크>가 역사를 바라보고 풀어낸 시각과 방법은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


나문희의 영화

우리 기억 속의 나문희는 어쩌면 묵직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배우였던 것 같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쌓은 그녀의 이미지는 약간은 덜떨어지고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에서 보여주는 나문희의 연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119분 동안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책임지는 그녀는 웃음이 눈물로, 눈물이 다시 웃음으로 변하는 그 모든 지점에 묵묵히 서있다. 아니 어쩌면 묵묵하다기 보다는 깊이 있게 머문다.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거의 다른 영화처럼 뒤바뀌는 <아이 캔 스피크>가 어설프지 않게 하나의 영화로 이어지는 이유는 나문희라는 굳건하고도 아름다운 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기를 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잘 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적다.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로 한편의 영화를 물들일 수 있는 배우는 매우 드물다.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의 색깔로 물든 영화다.

나문희


이제훈의 역할

영화 초반 이제훈의 역할은 분명히 주연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공무원이자 가장의 삶을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훈의 역량이 발휘되는 부분은 오히려 나문희의 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후반부다. 분량은 줄어들지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조연으로서의 역할, 스크린에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사람의 몫을 해주고 있는 배우. 어쩌면 이제훈이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연기한 박민재는 이미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제훈 본인과의 경계가 흐릿해진 것 같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 이제훈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제훈


역사를 바라보는 눈

나에게 이 영화가 몇 년간 준비되었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더 오래 준비하고, 더 큰 기대를 받고도 아스라이 사라져간 영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나에게 중요하다. 유독 역사영화가 많았던 이번 여름, 적어도 <아이 캔 스피크>는 내가 본 중 가장 유려하고 영리하게 역사를 풀어낸 영화다. 영화는 <박열>처럼 내가 고증에 충실했노라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군함도>처럼 그저 영감을 얻었다고 허술히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 캔 스피크>는 분명히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지만 그 사실을 풀어내는 방법이 따스하고 재치 있다. 사회적인 이슈를 적당히 가져오되 그 속에 부대끼는 인물들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사용하는 손길은 어설프지 않다. 그 이후로 클라이막스를 향하는 영화의 방향성 또한 선을 넘지 않기에 관객들의 마음은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 물론 캐릭터가 소비되는 과정이 훌륭했거나 연출적인 특이점이 있었냐고 한다면 그렇진 않다.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가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은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이 참고할만한 특이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이점


눈물이 나는 이유

이렇게 따스하게 역사를 품고 있는 <아이 캔 스피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조미료 빠진 눈물을 경험하게 해준다. 물론 몇몇 장면에서 여전히 눈물샘 자극을 위한 BGM과 연출이 엿보이기는 하나,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는 그저 아무런 장치 없이도 눈물이 흐른다. 김현석 감독은 '지금!' 하고 소리 지르듯 터뜨리는 눈물이 아닌 관객들이 캐릭터에 이입했을 때에야 비로소 흐르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 같다. 나문희는 물론 염혜란, 이상희, 손숙 등 뛰어난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가 내리쬐는 햇볕과 빗물이라면 영화가 품고 있는 사실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사는 비옥한 토양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연료를 투입한 눈물은 최근 마주한 어떤 영화보다도 기분 좋은 눈물을 만들어낸다.

기분 좋은 눈물


좋은 영화

그렇게 <아이 캔 스피크>는 웃음과 눈물이 모두 담겨있는, 그러면서도 해야 할 말을 잃지 않은 웰메이드 무비가 되었다. 아마도 최근 리메이크, 원작 기반의 영화제작 일변도와 달리 영화만을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있었기에 더 깊이 있게 서사가 전달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그 영화 '재미'있냐고, 그래서 나도 대체로 영화를 추천할 때는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한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영화는 '재미'로 평가되는 콘텐츠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아이 캔 스피크>를 조금 다르게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 '좋은'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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