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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Oct 10. 2017

남한산성,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column review

Intro

아픈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설득력 있게 연출된 장면들과 깊이를 품은 배우들이 선보이는 그 시대를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이병헌, 삶의 길을 보이다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거나 독보적인 존재, 혹은 물건을 표현할 때 '대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지금의 이병헌은 충무로에서 그런 존재다. 최명길을 연기하는 이병헌이 인조 앞에 펼쳐놓는 삶의 길은 이병헌 이었기에 사무치도록 설득력을 가진다. 그가 꺼내는 한 마디는 혓바닥이 아닌 밑바닥부터 올라오듯 무겁고 그가 왕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연기자의 그것이 아니라 충신의 그것처럼 선명하다. 역적이 되어서라도 죽음을 피하기를 간구하는 최명길이 끝내 '견뎌주소서'라는 한마디를 던질 때 그 단어는 하나의 시퀀스에 떨어지는 물방울로 끝나지 않고 영화 전체를 휘어감는 물길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병헌


김윤석, 죽음으로 삶을 찾다

혹자는 <남한산성>에서 선보인 김윤석의 연기가 이병헌보다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가 말하는 삶의 길이 이병헌의 그것보다 설득력이 없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윤석이 연기한 김상헌은 이병헌의 최명길 만큼이나 치열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삶을 찾는다. 이병헌이 비교적 잠잠하게 한 길을 걷는다면 김윤석은 오히려 고군분투하며 모든 길을 모색한다. 그는 결코 죽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최명길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그리고 김상헌의 진심은 김윤석의 연기로서 빛을 발한다. 둘의 연기력에 고저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보여준 삶에 대한 의지만은 다르지 않았다.

김윤석


진중함, 화면을 채우다

<남한산성>은 지루할 수 있다. 그렇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좋다. 신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순 있지만 좋은 영화가 모두 신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를 '재미'로만 들이댈 때 <남한산성>은 '재미'없는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품고 있는 진중함은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그리고 그 무게감은 결코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한산성>은 충분히 관람할만한 가치를 가진다. 그렇다고 <남한산성>이 무조건 무거운 공기만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묻어있는 유머와 재치는 영화의 분위기가 무작정 가라앉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한다. 또한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연과 아역은 영화가 회백색만을 띄는 것을 영리하게 막아내며 영화에 활기를 더한다.

진중함


남한산성,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작품을 대부분 정독한 관객으로서 <남한산성>은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담담하면서도 날이 서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찌르는 대사들을 과연 화면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질문에 전작들에서 다재다능한 연출력을 쌓아올린 황동혁 감독이 내놓은 대답은 적어도 80점은 넉넉히 줄 수 있는 결과물인 것 같다. 액션신의 아쉬움, 파트별 연결이 다소 부자연스러웠던 점 등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완벽한 완성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남한산성>이 두 명의 충신과 배경 인물들을 통해 펼쳐놓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충분히 관객들의 마음에 울림을 전달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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