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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Feb 02. 2018

올 더 머니, 품격과 깊이를 갖춘 노잼

fresh review

Intro

'재미'라는 요소는 다분히 주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영화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다.


오래간만에 직접 메가폰을 잡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무게감 있는 전개와 빠르게 캐릭터를 입는 인물들. 진부함과 적절함 그 어디쯤에서 줄타기를 하는 연출까지, 거장의 손길이 녹아있는 <올 더 머니>가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73년 일어난 게티 3세의 유괴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는 '유괴'라는 격한 주제가 서사를 덮고 있음에도 품격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차분하게 자신만의 길을 간다. 132분 동안 거의 동일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 영화는 마감 처리가 완벽한 고급 세단처럼 묵직하고 깊이 있게 모든 장면을 풀어 나간다. 이처럼 품격과 깊이를 모두 갖춘 <올 더 머니>에 단지 아주 작은 흠이 있다면 '재미'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관객 개개인이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다르겠지만 <올 더 머니>는 숨통이 트이는 위트도, 필요한 시점에 빠르게 흐르는 전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일부 지점에서 스릴러적 면모가 잠시 드러나기는 하나 그뿐이다. 덕분에 영화는 고급진 한우를 통째로 구워서 아무 양념도 없이 씹어먹는 느낌이다. 

품격


퍽퍽한 영화의 톤 앤 매너에 그나마 기름을 칠해주는 요소는 미셸 윌리엄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연기다. 얼마 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두 배우는 아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와 세계 제일의 갑부임에도 끊임없이 물질을 갈망하는 폴 게티를 탁월하게 소화해낸다. 영화의 분위기가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고 리듬감은 평지에 가까움에도 관객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는 두 주연배우의 생동감 있는 연기 덕분이다. 특히 올해 한국 나이로 무려 90살인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눌러 담듯 지그시 내뱉으며 세계 제일뿐 아니라 당시 역사에서 가장 부자라고 불렸던 폴 게티의 돈에 대한 갈망을 그 만의 연기에 담아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


결론적으로 <올 더 머니>는 실화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품격에 깊이까지 담아낸 완성도 있는 작품이다. 또한 주조연 배우들은 모두 각자의 몫을 해내며 연출과 연기에 모두 합격점을 줄 만 하다. 하지만 영화의 상영관이 개봉날 서울권에서조차 처참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재미 또한 느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올 더 머니>에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 확률이 높다. '대중'문화의 일부인 영화에 '대중'성이 없다면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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