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우리는 언제쯤 놀 수 있을까?

첫 번째 클래식

by 정세현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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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식탁에 앉아서 장난치던 윤이는 자꾸 자신을 다치게 하는 친구와 놀지 말라는 누나 선이의 말에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이 나에게는 2016년 영화관에서 경험했던 모든 순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왜 우리는 누구와도 제대로 놀지 못할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치열하게 나를 방어하고 숨겨왔을까. 윤가은 감독은 극 중 가장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영화에서 단 한마디의 대사가 나를 그토록 감명 깊게 울린 것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사는 세상, 언뜻 보기에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을 것 같은 그 나이의 학생들이 겪는 관계의 어려움과 치열함을 그려내는 <우리들>은 우리 모두가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영화다. 윤가은 감독은 극 중 팔찌, 색연필, 봉숭아 꽃잎, 매니큐어, 오이 김밥, 손수건, 대일밴드 등 7개에서 8개가 넘는 다양한 소품들을 사용해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다. 결코 적지 않은 사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고 영화 속에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이 오묘하게 얽히고설키며 연출되는 각각의 장면들은 강력하고 풍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영화의 포스터에도 사용된 봉숭아 꽃잎은 극 중 보라가 사용하는 매니큐어와 강렬하게 대비되며 소품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로 승화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런 소품의 사용은 물론 인물 각자의 환경과 주변 인물을 만들어내는 윤가은 감독의 능력은 그녀의 각본가로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극 중 선이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상황, 지아의 부모님의 상황과 그 모든 것이 만나는 지점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퍼즐처럼 아름답게 맞아떨어지고 그 모든 것들은 영화의 메시지가 한층 돋보이도록 완벽한 촉매제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아가 할머니와 함께 선이 어머니의 가게에 밤늦게 들리고 돌아가는 길에 선이가 지아의 부모님을 보게 되는 장면과 그 장면이 추후에 만들어내는 갈등의 절정이 너무나 흥미로웠는데 <우리들>에는 이런 식으로 인물들의 상황과 타이밍이 단 하나도 허투루 사용되지 않고 가득 차게 사용된다.


<우리들>의 클래식으로서의 가치는 이토록 완성도 높은 서사와 연출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들>을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은 이유는 맨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영화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가지는 울림의 깊이 때문이다. 영화 속 11살 아이들이 선보이는 세상은 잔인하다고 생각될 만큼 치열하고 난해하다. 지금의 나라도 도망치고 싶었을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내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관계의 소용돌이 속을 한 걸음씩 걸어나간 아이들은 마침내 관계를 회복하고, 오해를 풀어내는 방법을 배워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아이들이 피구를 하는 장면, 금을 밟지 않은 지아에게 지금 네가 금을 밟았으니 어서 밖으로 나가라며 억울하게 공격하는 아이들에게 선이는 당당하게 소리친다. 지아는 금을 밟지 않았다고, 자신이 정확하게 봤다고. 그렇게 누명을 벗은 지아는 곧바로 던져진 공에 맞고 선이의 옆으로 나와 어색하게 선다. 그리고 서로는 천천히 보일 듯 말듯한 웃음과 함께 서로를 바라본다. 꽤 오랫동안 조금은 수줍게. <우리들>이 클래식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이 두 명의 눈빛에 모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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