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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Feb 26. 2018

마지막 4중주, 그럼에도 아름다운 인생

두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마지막 4중주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굳이 우리네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마지막 4중주> 속 인물들의 삶은 '엉망진창' 그 자체다. 불치병부터 외도, 반항, 오해는 물론 깨어진 우정과 어긋난 사랑까지 단 106분의 러닝타임 동안 최대치의 난장판을 벌이는 영화는 이 모든 절망적 요소들을 총동원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 4중주>의 클라이막스는 내가 지금까지 관람한 어떤 영화의 클라이막스보다 격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위기에서 절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리듬감은 마치 클래식 콘서트에서 모든 악기들이 최대치로 연주되는 구간처럼 요동친다.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감정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맞이하는 삶의 위기를 곧 영화의 위기로 만드는 영리한 연출을 통해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영화라는 한정된 프레임으로 옮겨오는 데 성공한다. 특히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볼 수 없는 명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로버트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모든 상황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에 서있다. 호프만은 로버트를 연기하며 절망, 분노, 슬픔, 후회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들을 단 몇십 분에 압축하여 표현해내는데 그의 연기는 너무도 깊고 넓은 나머지 소름이 돋는다.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단 하나의 캐릭터에 담아내어 표현하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클래식 콘서트의 지휘자와 같이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인도한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개봉한 2013년쯤 필자가 영화를 감상했을 때는 극 중 로버트에 대한 특별한 감정 없이 단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에만 감동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즉 5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풍파를 그만큼 더 견디고 난 후 다시 관람한 <마지막 4중주>의 로버트는 첫 관람 때 보았던 로버트가 아니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아내를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헌신했던 남편이었으나 한 번의 외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남자, 자신의 욕심과 목표는 묻어둔 채 현악 4중주단의 존립을 위해 한 순간도 2인자의 자리에 불만을 표한 적 없었던 단원, 이런 로버트가 맞이하는 위기들은 마냥 흥분되고 영화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깝고 실질적이어서 더욱 마음이 짠했다. 지금의 내가 보는 <마지막 4중주>의 로버트가 5년 전과 다른 로버트가 되었듯 어쩌면 또다시 5년, 그리고 그 5년 뒤에 이 영화를 본다면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에는 로버트에 대한 관점이 바뀔 뿐 아니라 어쩌면 다른 인물들에 더욱 이입하거나 이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인생이 흘러갈수록 새로운 각도를 드러내는 매력, <마지막 4중주>가 클래식이라고 불릴만한 부분이다.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연주해온 현악 4중주 단원들의 불협화음을 땔깜삼아 서사의 불을 지피는 <마지막 4중주>는 조금은 불편하고 과한 감정들과 도를 넘어서는 사건들로 불타오른다. 그런 영화를 보며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막장드라마라고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저 자극적인 소재의 향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클래식을 듣는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고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마지막 4중주>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난장판은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4중주>라는 프레임과는 별개로 그 안에 담긴 삶의 일면들이 우리의 그것들과 결국 맞닿아있다는 무의식의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가는 엔딩 부분에서 그들은 어떤 사건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로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의 연주를 시작한다. 베토벤이 쉬지 않고 연주하도록 만들어둔 현악 4중주 14번, 하지만 연주 중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정상이 아님을 감지한 피터는 도중에 무대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주자가 올라온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연주는 이어진다. 화면이 꺼져도 그들의 연주는 계속된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그들이 보여준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웠다. 여전히 인생의 문제는 그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들이 모인 그 자리, 그 순간만큼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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