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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Apr 14. 2018

범죄의 재구성, 관객의 마음을 훔치다

세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범죄의 재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단순히 '처음'한 사람인 경우보다 처음으로 '의미있게'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최동훈은 한국 영화사에서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의미있게 연출해낸 감독이다. 2004년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범죄의 재구성>을 선보인 최동훈 감독은 타고난 감각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바탕으로 그 해 청룡상, 대종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며 충무로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타짜>, <도둑들>등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오락영화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최동훈 감독의 시작점인 영화, <범죄의 재구성>은 그의 가장 오래된 영화인 덕분인지 가장 짙게 최동훈의 냄새가 배어있는 영화다.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범죄의 재구성>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러운 티가 나지 않는다. 백윤식, 박신양, 염정아, 이문식 등이 참여한 주조연진은 화려하진 않지만 알차고 밸런스가 좋았다. 무엇보다 어떤 감독보다 캐릭터버스터 스타일의 서사구조를 만들어내는데 능한 최동훈 감독의 능력은 이미 <범죄의 재구성>부터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명의 캐릭터를 조각해내고 자유자재로 사용한 최동훈 감독은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으레 그렇듯 캐릭터의 영향력에 서사가 묻히는 우를 범하지 않고 영리하게 서사가 등장인물들을 품고 가는 프레임을 완성했다. 덕분에 <범죄의 재구성>은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격렬하게 요동치는데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독특한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배우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화합을 이룬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스크린이 어떤 순간을 뱉어내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다. 단순히 액션과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 수준이 아니라 온전히 관객을 설득해내는 기승전결을 소유했던 <범죄의 재구성>은 한국 오락영화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처럼 타고난 최동훈 감독의 능력은 백번 칭찬해도 아깝지 않지만 <범죄의 재구성>을 완성한 진짜 1등 공신은 박신양이었다. 극 중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인물을 1인 2역으로 연기한 박신양의 연기는 문자 그대로 혀를 내두를 만했다. 오래전에 죽은 형, 최창호를 연기하는 동생 최창혁을 연기하는 박신양에게 영화의 반전을 고스란히 맞긴 최동훈 감독의 선택은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관객까지 속인 박신양의 연기에 힘입어 대성공을 거뒀다. 말투와 걸음걸이는 물론 외모까지 다른 두 사람을 연기한 박신양의 능력은 단순히 연기를 잘 한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전반에 독특한 결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결론적으로 <범죄의 재구성>은 케이퍼무비의 거장, 최동훈과 연기의 거장 박신양이 만나 만들어낸 최고의 오락영화 중 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의 재구성>이 단순히 잘 만든 오락영화를 넘어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히 돈을 훔치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 중 최창혁은 염정아가 연기한 서인경을 처음 만난 후 사랑에 빠진다. 이후 도둑들이 모여 한탕을 끝낸 후 영화의 결말에서 최동훈 감독은 50억이 넘는 현금다발이 아니라 최창혁과 함께하는 서인경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 구조를 단순히 케이퍼무비에 조미료처럼 첨가된 러브라인이라고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최동훈 감독이 의도한 이 결말이 <범죄의 재구성>을 케이퍼무비의 프레임을 두른 로맨스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최동훈 감독은 최창혁이 뺏은 서인경의 마음이 돈보다 더 값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관객들은 알게 모르게 그런 최동훈 감독의 심리전에 슬며시 눈과 귀를, 그리고 끝내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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