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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Feb 21. 2018

리틀 포레스트, 자연을 닮은 영화

fresh review

Intro

갈수록 더 자극적인 장면과 주제들로 가득 찬 영화들이 판을 치는 요즘, 한국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MSG를 듬뿍 넣은 음식마냥 관람이 끝난 후에도 뒷맛이 영 깔끔하지가 않다.


그런 와중에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봄나물을 무쳐만든 정갈한 밥상처럼 말끔하다. 처음부터 잔잔하게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리듬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는 자연의 사계절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서사를 진행할 뿐, 이렇다 할 위기도 절정도 마련하지 않는다. 덕분에 조금은 지루하고 밋밋하게 흘러가는 103분의 러닝타임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양념이 강한 음식이 처음에는 맛있어도 금방 질리고, 간이 삼삼한 음식은 먹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것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의식의 흐름에 눈과 귀를 맡기고 흘러가다 보면 자연스러움 속에서 삶의 깊이를 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깊이


<아가씨>에서 보여준 신들린 연기로 단숨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김태리는 이번 <리틀 포레스트>에서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을 내려놓은 생활연기 또한 훌륭하게 해내며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농사를 짓고, 계절에 맞춰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는 김태리는 영화가 지향하는 톤 앤 매너 그 자체를 연기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더불어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이나 다름없는 조연, 류준열과 진기주는 자신들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김태리와의 투샷, 쓰리샷을 모두 특별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 출연은 처음인 진기주는 톡톡 튀는 매력으로 비교적 조용조용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태리와 류준열 사이에서 다양한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며 영화의 템포가 적당한 높이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반면 극 중 중요한 포인트마다 묵직한 울림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은 플래시백 형태로 잠깐씩 등장하는 문소리가 담당했다. 문소리는 자신의 네임밸류에 걸맞게 단 몇 마디의 대사와 행동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하며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다.

케미


결론적으로 <리틀 포레스트>는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합쳐진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포인트가 없는 서사와 어떤 것도 제시하거나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의 구조가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답을 아는 것보다 끝내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영화는 자연스럽게 시작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엔딩을 맞이한다. 비록 기억에 남는 명대사나 엄청나게 놀라운 연출은 없을지라도, 가끔은 조금 싱거운, 하지만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그런 영화 한편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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