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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17. 2018

쓰리 빌보드, 명품 블랙 코미디

column review

Intro

혼란하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눈물을 글썽이며 한숨 쉬듯 새어 나오는 미소가 아니라 정말 웃겨서 웃는 웃음, <쓰리 빌보드>의 힘은 이 웃음에 들어있다.


명품 주연

<쓰리 빌보드>를 관람하기 전까지 나는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놓친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연기한 밀드레드를 확인한 후 나는 비로소 그녀가 왜 2018년 주요 시상식에서 모든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는지 이해했다.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이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배역을 완전히 압도했다면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그 반대로 자신을 배역 앞에 온전히 내려놓는다. 자신이기를 포기한 연기, 맥도맨드는 밀드레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 없이 그저 밀드레드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부어 넣은 배우의 캐릭터는 갓 태어난 자연의 무엇처럼 생명력이 살아넘친다. 그녀의 눈빛은 한순간도 죽는 법이 없고 그녀의 대사는 명확하고 뚜렷하며 그녀의 행동은 무게감이 넘친다. 자신을 온전히 버림으로써 영화 전체를 소유하는 연기,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명품 주연이다.

프란시스 맥도맨드


명품 조연

한 영화에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 모두의 주인공이 된 배우를 두 명이나 만나는 것은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메인메뉴와 디저트가 둘 다 엄청나게 맛있는 것과 비슷하다.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엄청나게 맛있는 메인메뉴였다면 샘 록웰은 메인메뉴만큼이나 맛있는 디저트 같았다. 극 중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밀드레드에 비해 서사의 진행에 따라 다채로운 행동 변화와 내면을 보여주는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웰은 영화에서의 비중도 작지 않고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쓰리 빌보드>의 코미디적인 요소의 8할은 그의 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감정의 구분선이 없는 샘 록웰의 연기는 영화의 서사가 의외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가지도록 만드는 강력한 도구였다. 주연에 비해 극 중 분량은 적을지라도 그 영향력만은 동등하게 뿜어내는 연기, 샘 록웰은 명품 조연이다.

샘 록웰


명품 각본

미국 미주리의 작은 가상 마을에 설치된 3개의 빌보드 광고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쓰리 빌보드>는 영화를 위해 쓰여진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강한 행동력과 카리스마로 뭉친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동성애자, 유색인종, 난쟁이, 불치병 환자 등 다양한 처지에 놓여있을 뿐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물들을 통해 흡인력 있는 서사를 전개한다. 뚜렷한 색깔을 가진 캐릭터들을 다수 등장시키는 영화는 그럼에도 서사가 끌려가지 않고 인물들을 영리하게 엮어내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프닝부터 개개인의 관계와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해소하기를 반복하는 영화는 놀랍게도 이야기에 혼란함은 누적하면서도 치밀함은 유지하는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치로 뽑아내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이어나가면서도 모든 장면에서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서사, <쓰리 빌보드>의 각본은 명품이다.

각본


명품 블랙 코미디

결론적으로 <쓰리 빌보드>는 좋은 연기와 훌륭한 각본이 만난 수작이다. 그리고 <쓰리 빌보드>가 단순히 좋은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명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둡고 폭력적인 배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관객들을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딸의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부터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는 <쓰리 빌보드>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깔고 간다. 하지만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는 관객들이 웃지 않고는 배기기 힘들 만큼 재치있고 재미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서사적 배경과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인물들의 불화, 그리고 폭력과 차별 속에 터져 나오는 웃음, <쓰리 빌보드>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훌륭한 명품 블랙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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