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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n 08. 2018

살인의 추억, 가장 한국적인 명작

다섯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봉준호는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한 감독도, 국제적으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감독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감독을 한 명만 꼽아달라고 한다면 나의 선택은 주저 없이 봉준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처럼 아름답고 이국적이지도, 최동훈 감독의 작품처럼 상업성이 풍부하지도 않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어떤 감독의 영화보다 현실을 깊이 있게 반영한다. 그 느낌은 마치 투명한 책받침을 사회라는, 또는 세상이라는 교과서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은 그런 봉준호 감독의 능력이 놀랍도록 세심하게 담겨있는 작품이다. 


2003년에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장르와 소재만 봤을 때 가벼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영화는 의외로 웃음이 터지는 구간이 적지 않다. 분명히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영화인데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관객들의 웃음은 순도 높은 진짜 웃음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장르의 변주는 관객들에게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경험을 선사한다. 극의 배경은 어둡고 무겁지만 모든 인물의 행동과 상황까지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봉준호는 영화의 서사를 정해두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엮어놓고 그 흐름 속에 한 장면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장르가 없다. 누군가의 삶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되기 쉽지 않을진대 여러 명의 삶이 엮였을 때 그 안에는 당연히 모든 종류의 감정과 상황이 들어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살인의 추억>은 코미디이기도, 스릴러이기도, 범죄영화이기도,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봉준호식 장르의 변주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살인의 추억>에서는 송강호가 그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김상경, 박해일, 송재호, 변희봉 등 영화에는 송강호를 필두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진이 함께했지만 영화의 모든 서사와 장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송강호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인의 추억>에서의 송강호를 떠올릴 때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희대의 유행어만을 떠올리는 것이 심히 아쉬울 만큼 영화 속에서 송강호가 보여주는 모든 움직임은 메시지 그 자체였다. 자연스럽다 못해 화면 전체에 녹아들어 버린 것 같은 송강호의 연기는 132분의 러닝타임에 골고루 영향력을 미치며 범인을 잡고 싶은 박두만의 마음을 혈관에 꽂은 닝겔처럼 관객들의 몸속 깊숙이 전달한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박형사의 마음과 동조된 관객들은 엔딩씬에서 첫 범죄를 발견했던 장소에 도착한 송강호가 마지막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에 압도되고 만다. 그 눈빛은 정말로 범인을 잡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눈동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의 압도적인 연기와 봉준호의 천재적인 연출이 만나 탄생한 명작이다. 하지만 단순히 명작이라는 칭호는 <살인의 추억>을 형용하기에 부족하다. 앞서도 말했듯 봉준호가 가장 잘 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담은 <살인의 추억>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뿍 담겨있는 것은 물론 한국적인 인간관계, 대화, 생각의 방식이 모두 담겨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영화의 결을 만들어낸다.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을 티 나지 않게 녹여내 만들어진 독특한 결, 이것이 <살인의 추억을>을 단순히 명작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이라고 소개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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