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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l 12. 2018

미스 리틀 선샤인, 가치를 얘기하는 방법

여섯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헐리웃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부부 감독인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는 UCLA 필름 스쿨에서 만나 결혼, 슬하에 3명의 자녀가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2006년 개봉한 <미스 리틀 선샤인>에 등장하는 가족이 겪는 사건 사고들은 조금 오버스럽기는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를 언급할 때는 감독뿐 아니라 각본을 제공한 마이클 안트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첫 장편 각본작이었던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등 다양한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거머쥔 마이클 안트가 이후 <토이 스토리3>, <인사이드 아웃>등 가족의 가치를 얘기하는 애니메이션에서 맹활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재기 발랄하게 소개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약간은 얄밉기도, 한편으로는 잔인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관객의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 감독이 서사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미 오프닝 시퀀스에 충분히 담겨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전혀 팔리지 않는 강의로 수익이 없음에도 늘 자신은 루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빠, 가족의 밥상에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차린 지가 오래인 엄마, 마약으로 요양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게이 애인에게 차이고 자살을 시도한 삼촌, 자신이 목표한 학교에 합격할 때 까지는 묵언수행을 선언한 아들, 마지막으로 또래에 비해 외모가 뛰어나지 않음에도 미인대회에 목숨을 거는 막내딸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누구 하나 편안한 웃음으로 마주하기 힘든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틈을 마련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 틈을 통해 심각한 대화와 어이없는 상황들이 연발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끝없이 킬킬거릴 수 있다. 


그렇다고 <미스 리틀 선샤인>이 마냥 웃다가 끝나는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관람한 후 천천히 곱씹어보면 <미스 리틀 선샤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무엇인가에 성공하기보다 끝없이 실패하고 낙담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무엇인가에 도전했다는 것이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각본과 감독들은 혼란하고 다양한 에피소드의 파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끝없이 얘기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는 극 중 올리브를 연기한 아비게일 브레스린을 통해 명쾌하게 전달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단 11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브레스린은 영화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메시지 그 자체였다. 다양한 상황에서 진심이 담긴 연기는 물론 극 중 모든 배우들과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이는 브레스린은 영화의 제목처럼 햇살 같은 존재감을 선보인다. 


단순한 액션영화도, 숨죽이며 봐야 하는 심각한 영화에도 그 깊이가 다를 뿐 얘기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콘텐츠는 결국 그 가치를 말하는 방법에 따라 영화의 가치 또한 정해지는 것 같다.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올리브를 둘러싼 가족들은 올리브의 마음과 생각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한다.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와서는 모든 가족이 미인대회에 출연했지만 1등은커녕 꼴찌가 자명해 보이는 올리브를 위해 다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춘다. 극 중 가장 감동적인 동시에 웃긴 장면이기도 한 이 장면은 신파나 억지스러운 장치 없이도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영화 내내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며 마음이 다친 가족들이 힘을 합쳐 올리브의 마음을 지켜주는 이 순간은 <미스 리틀 선샤인>이 가치를 얘기하는 방법을, 이 영화가 영원히 클래식의 자격을 갖춘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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