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나는 <라라랜드>의 주옥같은 OST 중에서도 Audition을 유독 좋아한다. 강렬한 인트로를 담당하는 Another Day of Sun이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City of Stars도 물론 멋지지만 Audition에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엠마스톤이 절절하게 내뱉는 ‘Here’s to the ones who dream’라는 가사. <라라랜드>는 꿈꾸는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영화다.
Here’s to the ones who dream
데미언 셔젤 감독은 21세에 <라라랜드>의 각본을 구상했으나 제작비를 지원받지 못해 <위플래시>를 먼저 완성했다고 한다. <위플래시>는 드러머를 꿈꿨던 그의 자전적 경험이 일부 반영된 영화였다고 해도 도대체 21세의 청년에게서 어떻게 <라라랜드>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라라랜드>는 장르상 로맨스, 뮤지컬 영화로 분류되지만 정확히는 꿈과 인생을 말하는 드라마 영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극 중 연인으로 등장하는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꿈을 향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일은 묘연하기만 하다. 시간이 흐른 후 두 명은 각자의 영역에서 꿈꿨던 것을 이룬다. 함께가 아닌 채로. 이런 결말에 대해 관객들은 이 영화가 '배드엔딩이다'와 '해피엔딩이다'로 양분되곤 한다. 내가 볼 때 <라라랜드>를 로맨스 영화로 본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배드엔딩이겠지만 두 주인공의 삶을 생각한다면 해피엔딩인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연인과 헤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꿈을 이뤘다면 인생을 통틀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내가 본 <라라랜드>는 꿈꾸는 이들을 위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극 중 세바스찬은 자신이 운영하는 재즈바의 사장님이 되고 미아는 인기 절정의 배우로 거듭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잘 나가는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커녕 매달 받는 월급조차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 간신히 미치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배우는 고사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가족의 눈치까지 보기 일수다. ‘live in La La Land’라는 영어 숙어는 ‘꿈속에서 산다’라는 부정적 의미의 관용어다. 영화를 잘 생각해보자,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인트로 장면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운명적인 만남은 어떤가? 그리고 결말에 이뤄지는 두 사람의 거대한 성공은? 사실 <라라랜드>는 그 자체로 꿈속을 그린 영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미아가 부른 Autition의 2절 가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단순히 꿈꾸는 자가 아니라 어쩌면 이 영화는 꿈꾸는 바보들을 위한 영화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소 잔인하기까지 하다.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그럼에도 <라라랜드>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그리는 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동시에 마치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dream’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자면서 꾸게 되는 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목표로서의 꿈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후 꿈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잠에서 깨어난 후에는 다시 꿈을 향해 살아간다. <라라랜드>는 이런 ‘꿈’의 속성을 영리하게 파악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이다. 꿈꾸는 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각박하고 어려울지라도 언젠가 그들도 세바스찬과 미아처럼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위로, 혹은 희망이 <라라랜드>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