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의심에서 신뢰로 가는 길

column review

by 정세현

Intro

최근 극장가에는 '액션'을 내세우는 스파이물이 대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스파이물의 본질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발생하는 긴장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작>은 스파이물의 본질을 건드리는 영화다.


긴장감

긴장감이 생기는 경우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가장 익숙한 긴장감이기에 흡인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공작>에서 윤종빈 감독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인물들의 관계를 엮어두고 누구와 어떤 인물을 붙이든 개성 넘치는 긴장감이 발산되도록 관계도를 그려나간다. 덕분에 영화는 총성 한 발 없이도 137분 동안 긴장감으로 충만하다. 어떤 의미에서 윤종빈이 설계해둔 긴장감의 고리는 <공작>의 서사를 매 순간 클라이막스로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순간이 특별하기에 관객들은 영화의 단 한 장면도 소홀히 관람할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4.jpg 긴장감


연기력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오르는 긴장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답은 이미 질문에 있는 것 같다.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다면 무르익어가던 긴장감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 <공작>에서 긴장감 뿐 아니라 서사의 가장 큰 두 개의 축을 담당하는 황정민과 이성민은 이 순간들이 때로는 기름을 부은 장작처럼 격렬하게, 어떤 순간에는 불길만 남은 숯처럼 조용하게 타오르도록 여유 있게 주무른다. 특히 흑금성을 연기한 황정민이 지금까지 연기해온 여러 가지 캐릭터를 잘 버무렸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리명운을 연기한 이성민은 이 작품에서 비로소 이성민의 시그니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임팩트를 남겼다. 한편 주변부에서 이야기를 함께 이끄는 조진웅, 주지훈 또한 인물 간의 긴장감에 한 축을 담당하며 <공작>은 전체적으로 빈틈없는 캐스팅을 완성했다.

3.jpg 연기력


이야기

분단된 한반도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소재들은 항상 충무로가 탐내는 이야깃거리였지만 정말 제대로 소재들을 풀어낸 영화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흑금성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공작>은 연출과 서사가 소재에 함몰되지 않고 정확하게 이야기가 바라봐야 할 곳을 바라보는 영화다. 인물의 소개를 위해 다소 산만한 초반부를 제외하면 <공작>은 출중한 긴장감과 배우들의 연기력을 연료 삼아 단 한순간도 방향감을 잃지 않고 힘 있게 앞으로 뻗어나간다. 비교적 긴 러닝타임을 활용해 다양한 인물과 시대상을 두루 반영하는 영화는 그럼에도 흑금성과 리명운, 단 두 명의 관계에 거점을 마련하고 빠르지만 과하지 않게 나머지 이야기들을 훑어나간다. 덕분에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전혀 단조롭지 않은 <공작>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보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기에 관객들의 집중력은 흩어지지 않는다.

5.jpg 이야기


의심에서 신뢰로

결론적으로 <공작>은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다소 진부할 수도 있었던 소재를 영리하게 요리한 웰메이드 첩보물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에서 빠지기 힘든 신파적 요소를 최대한 자제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베이징과 북한 등 국내외의 다양한 공간들을 맛깔나게 표현해낸 것 또한 훌륭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모든 표면적인 요소들을 뛰어넘어 <공작>이 정말 좋은 영화로 다가왔던 이유는 남과 북의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흑금성과 리명운의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 속에 윤종빈 감독은 남과 북의 관계를 슬쩍 끼워 넣으며 얘기하는 듯하다. 우리의 관계는 의심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종국에는 신뢰로 나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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