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 황금알을 낳는 미운 오리 새끼

fresh review

by 정세현

Intro

DC코믹스가 스크린에서 자멸하며 히어로 판을 마블이 장악한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런 마블도 씁쓸한 구석이 있다. 베놈처럼 회사가 힘들던 시절 소니에 팔아넘겨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의 존재다.


일단 영화만 놓고 보자면 <베놈>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액션영화다. 마블 코믹스 원작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 빌런, 베놈의 특징을 준수하게 살렸고 극 중 숙주의 역할을 담당하는 톰 하디의 연기력도 훌륭하다. 거기에 틈틈이 첨가되어 있는 개그 요소도 나쁜 수준은 아니어서 장르적인 관점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마저 내릴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심비오트의 특성을 활용한 각종 액션씬은 2007년 개봉했던 <스파이더맨3>에서 조연으로 잠시 등장했던 베놈에 크게 실망했던 원작 팬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여볼 수 있을 만큼 다채롭게 준비되어,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크게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4.jpg 액션


하지만 문제는 <베놈>에게 붙어있는 ‘마블’의 꼬리표다. 베놈은 독자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빌런임에는 확실하나 영웅과 싸워야만 하는 태생적 특성이 짙게 남아있어서인지 서사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다. 덕분에 베놈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과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베놈의 행동과 결정이 모두 공허하게만 느껴지고 그저 액션의 껍데기만 남는 느낌이다. 또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캐릭터여야만 마땅했을, 그리고 그렇게 표현될 예정이었던 베놈은 관람가 조절을 위해 많은 부분이 난도질당하며 안 그래도 흐릿한 정체성에 어색함 마저 더해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jpg 한계


결론적으로 <베놈>은 소니에게는 황금알을 낳아주지만 마블과 팬들에게는 집 떠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다. 그저 장르적 관점에서 액션영화로서의 <베놈>은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지만 온전히 갖춰진 세계관 안에서의 진짜 베놈을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베놈>은 백조가 될 수 있음에도 오리들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는 미운 오리 새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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