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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를 이해시켜야 하는 콘텐츠이기에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캐릭터 정체성에는 경계선이 없다.
특별한 것 없는 싱글맘 스테파니가 화려한 워킹맘 에밀리를 만나며 벌어지는 사건이 소재인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앞서 언급한 두 명과 에밀리의 남편인 숀까지 크게 세 명의 캐릭터가 서사를 이끈다. 영화의 초반은 매우 차분하고 설명적으로 캐릭터들을 보여주며 특히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극단적으로 다른 삶과 외모를 주시한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는 중반부터 캐릭터들은 갑자기 정체성을 갈아입는다. 특히 스테파니는 후반으로 갈수록 다양한 정체성이 융합된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캐릭터의 심경 변화와 행동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서사가 소유하는 개연성과는 별개로 그다지 납득되지 않았다. 스테파니만큼은 아니지만 에밀리와 숀 또한 미스터리한 캐릭터라고는 하더라도 서사가 끝나가는 후반까지도 줏대 없는 결정들을 남발해 어느 캐릭터 하나 서사를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캐릭터들이 제각각 뛰어노는 와중에 기본적으로 스릴러물의 옷을 입은 서사는 중반까지도 사건의 실마리조차 주지 않더니 후반 들어 모든 사건을 숙제하듯 해치워버려 관객들이 이야기를 곱씹고 이해할만한 여유를 남기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폴 페이그 감독은 영화 곳곳에 웃음 포인트를 심어두는데, 캐릭터와 서사가 이미 갈 길을 잃다 보니 웃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잠시 킬킬거리기는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 썩 영양가 없는 웃음이 뿌려져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안나 켄드릭의 연기는 매우 준수했고, 특히 스테파니를 연기한 안나 켄드릭은 혼란스러운 영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매력으로 관객들이 117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주연배우들의 호연과 나름의 웃음, 스릴러적 모양새는 갖췄으나 완성도에 있어서는 결코 큰 점수를 주기 힘든 영화다. 캐릭터의 정체성이 변할 수는 있으나 그 동기나 결정이 그다지 납득되지 않고, 진득하니 중심을 잡는 캐릭터 없이 3명의 인물이 날뛰는 중에 영화의 서사는 뭉개져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곳곳에 들어간 웃음까지도 함께 죽어버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