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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an 19. 2019

말모이, 좋은 재료에 적당한 양념

column review

Intro

재료가 아무리 고급 져도 양념이 과하면 요리를 망친다. 한국 영화들이 가장 못하는 지점, 좋은 소재를 과한 신파와 억지 스토리로 망쳐버리는 일이다. <말모이>는 미원을 쓸지언정 간을 맞추는 법을 아는 영화다.


좋은 재료, 한글

유명한 요리사들은 간혹 최고의 요리는 결국 최고의 재료에서 결정된다고 말하곤 한다. 훌륭한 요리사가 온갖 기교를 부리고 다양한 양념들이 재료의 부족함을 가려도 결국 맛있는 요리는 재료 본연의 맛에 달린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를 하나의 요리라고 본다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사와 소재의 밋밋함은 영화에 강력한 추진력을 달아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모이>는 아주 좋은 재료를 준비했다고 생각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글,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국민들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큼 일반적인 소재인 동시에 무게감 또한 충분해 어떤 서사를 붙여도 본연의 깊은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소재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말모이>는 소재를 허투루 쓰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영화가 관객들의 기대보다 다소 길어진 것은 아쉬우나 소재를 충분히 풀어내고 곱씹는 실력은 분명히 좋은 재료에 걸맞은 수준이었다고 생각된다.

재료


최고의 요리사, 유해진

<럭키>부터 시작된 주연, 유해진은 신선하긴 했으나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간혹 주연에 도전하는 조연배우,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말모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주연으로서의 유해진은 영화 전체를 필요하다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캐리하는 파워풀한 주연 그 자체였다. 사실 그렇게 잘생긴 얼굴도, 그렇다고 다양한 인생을 담아내기에 최적화된 얼굴도 아닌 유해진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배역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영화 전체를 장악하는 능력에 있어 대한민국 남자 배우 중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활약을 선보인다. 최고의 요리사가 어떤 재료를 쥐여주어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듯 유해진 또한 <말모이>에서 웃음을 줘야 하는 순간과 감동을 선사해야 하는 모든 순간에서 제 몫을 발휘하며 좋은 소재를 자유자재로 요리해낸다.

요리사


적당한 양념, 애국심

애국심이라는 양념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의미 있었던 일을 조명하는 영화를 보며 애국심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말모이>는 분명히 '애국심'이라는 키워드로 정의될 수 있는 소재를 가졌으나 '과유불급'이라는 키워드 또한 충분히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든 영화든 적당한 양념의 여부는 일종의 화룡점정을 찍는 것과도 같다. <말모이>에 들어간 적당한 애국심과 감동코드는 기존의 한국 영화들이 끔찍하게 답습한 '신파'라는 키워드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만으로도 큰 점수를 줄 만한 동시에 영화를 맛깔나게 만들어준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담백하고 욕심 없이 서사가 진행되거나, 어쨌거나 들어가 있는 애국심의 양념이 아주 자연적인 맛은 아닐지라도, <말모이>에 뿌려진 양념의 정도는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양념


좋은 재료와 적당한 양념

결론적으로 <말모이>는 한글이라는 좋은 소재와, 유해진이라는 훌륭한 요리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국심이라는 적당한 양념까지 합쳐진 괜찮은 상업영화다. 간혹 보이는 어색한 장면전환과 앞에서도 언급한 다소 과한 길이의 러닝타임은 장편 연출이 처음인 엄유나 감독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되는 반면 중반까지는 한없이 웃기다가도 후반부엔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어두워지는 서사의 흐름은 엄유나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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