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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23. 2019

우상, 다 함께 길을 잃었다

fresh review

Intro

이수진 감독이 데뷔작에서 너무 큰 성공을 맛봐서일까, <우상>은 고민도 욕심도 너무 많이 들어간 나머지 관객들이 재미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우상>을 이끄는 세 명의 주연,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는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스크린으로 배어 나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표현해냈다. 하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서사'라는 도화지 위에 먹물로 쓰듯 그어져야 관객들에게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을진대, <우상>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서사는 바닥에 둔 채 허공에 휘갈기듯 공허하게 화면을 맴돈다. 관객들의 눈은 분명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뇌 속으로,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배우들


그렇다고 <우상>의 스토리가 부실하다거나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우상>은 인트로에서도 말했듯 너무 많은 내용과 상징들을 욱여넣으려다 배탈이 난 모양새에 가깝다. 영화가 반드시 장르에 일치하는 흐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상>이 적어도 자신을 명백하게 '스릴러'라는 하나의 장르로 프레임 씌웠다면, 장면 장면마다 나오는 요소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상>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는 적당히 설명하고, 어딘가는 어물쩍 넘어가고, 어떤 부분은 왜인지도 모른 채 과도하게 힘을 준다. 기승전결이 없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토리가 흐르는 방향은 있어야 하는데 <우상>은 그런 흐름조차 없는 느낌이다.

이야기


결론적으로 <우상>은 훌륭한 주연 세 명이 모였음에도 영화도 캐릭터도 관객들과 함께 목적지를 잃은 느낌이다. 분명히 많은 이야기가 담겼고, 특징 있는 캐릭터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시도해보려는 의도는 엿보이지만, 관객들의 눈앞에 놓인 144분은 그저 이도 저도 아닌 길고 난해한 영화일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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