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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Apr 17. 2019

미성년, 함축된 것들의 힘

column review

Intro

적어도 충무로에서 배우 출신 감독이 크게 성공한 선례는 찾기 어렵다. 그렇기에 배우 김윤석이 연출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많은 관객들은 기대보다 우려를 먼저 나타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김윤석의 다음 작품 엔딩크레딧엔 배우 김윤석보다 감독 김윤석이 더 기다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축된 대사

<미성년>은 대부분의 순간에 말을 아낄 줄 아는 미덕이 있다. 어떤 상황도, 감정도 긴 대사로 손쉽게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김윤석은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많은 것들을 함축한다. 영화가 96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엔 등장인물들의 별것 아닌 대사 한마디에도 가슴이 저리다. 이런 게 소위 '배우 출신 감독'의 장점이라는 것일까? 김윤석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배역이 어떤 대사를 할 때 어떤 느낌이 전달되는지 예리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대사


함축된 장면

화면으로 말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물체에 하나의 의미를 담는 건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면 가능하다. 어떤 장면에 다양한 의미를 담는 건 영화의 서사와 연기가 모두 어우러지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 김윤석은 함축된 대사들을 보완하는 훌륭한 장면들을 여럿 연출해낸다. 장면전환이 다소 정신없기는 하지만 배우들과 물건, 배경이 상호작용을 이루는 장면들은 신인의 그것이라고 보이지는 않을 만큼 충분히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성년>에 등장하는 배역과 장소가 적지 않음에도 그 모든 요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에 지긋하게 붙어있고 서로 간의 결속을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면


함축된 서사

개인적으로 <미성년>을 높게 평가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윤석이 각본부터 직접 참여해서 제작된 오리지널 영화 시나리오가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불륜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는 있었지만 김윤석은 같은 소재를 자신의 색깔에 맞게 다채롭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많은 것을 함축한 대사와 연출은 그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서사 위에서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막힘없이 달린다. 영화는 그 짧은 상영시간 안에서도 영주, 미희, 주리, 윤아를 모두 살핀다. 아니 더 정확히는 누구 한 명 놓치지 않는다. 영화 설명에 앞서 언급한 4명, 그리고 김윤석이 연기한 대원은 모두 주연으로 표현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설명은 제작사의 일방적인 선언이 아니다. <미성년>은 5명의 배역 모두 서사 안에 같은 비율로 녹여들인다.

서사


함축된 것들의 힘

결론적으로 <미성년>은 대사부터 서사까지 모든 것들이 함축적으로 단단하게 합쳐진 흥미로운 데뷔작이다. 영화가 길지 않다 보니 감정이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거나 연출적으로 투박한 부분은 있을지언정 김윤석 감독이 보여준 연출 능력과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음 작품이 충분히 기대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들을 보여주면서도 신파와 질척임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제거했다는 점에서 김윤석 감독의 데뷔작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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