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어렸을 적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듣던 기억이 나는가? 별것 아닌 소재인데도 기승전결을 기가 막히게 끌고 가시고 그럴싸한 상상력들이 이곳저곳에 가미되어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다가 어느새 잠들어버리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식 옛날 얘기다.
이 따뜻하고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의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번 영화에서 그의 매력과 연기력을 아낌없이 방출한다. 왕년에 잘 나갔던 서부극 스타에서 이제는 한물간 가상의 인물, 릭 달튼을 연기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6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한 명의 배우로서의 릭 달튼을 다채로운 감정들로 담아낸다. 독일과 이탈리아계 피를 물려받고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서 출생해 어떤 남배우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제 삶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과거 작품에서 독일군을 때려잡고,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는가 하면 여전히 서부극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붙태우는 릭 달튼의 삶은 그 자체로 타란티노식 유머인 동시에 관객들에게 있어서도 시대상과 디카프리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영리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릭 달튼의 파트너이자 스턴트 대역인 클리프 부스를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도 역시 그만의 매력과 묵직함으로 극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노련하게 무게 추를 조정한다. 가벼운 듯 진지한 듯 은근히 성실한 그의 모습은 릭 달튼과는 또 다른 캐릭터성을 보이며 쿠엔틴 타란티노의 옛날 얘기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여기저기 열심히 족적을 남기며 뛰어다닌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릭 달튼이 자신의 업에 몰두하며 극의 시대상을 끌고 간다면 브래드 피트의 클리프 부스는 주변부에서 조금씩 과거사를 변형하거나 연결하며 서사에 첨가된 상상력을 실체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의 특성은 명불허전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과 노련함으로 빈틈없고 매력적으로 형상화된다.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대단한 팬도 아니고 9편의 전작들을 모두 다 챙겨 보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그의 경력에 있어 최고의 작품인지 최악의 작품인지를 논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대단한 미술팀의 작업과 섬세한 동시에 과감한 연출, 매력적인 배우들의 열정이 모두 담긴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가 161분이나 되다 보니 분명히 중반부로 들어가기 전 초입에서는 다소 지루함도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가 흐를수록 이 흥미롭고 우스운 옛날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그 만의 스타일이 이 영화에 충분히 묻어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으나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수록 아쉬움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그가 엄청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결론적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희대의 사건을 소재로 삼아 쿠엔틴 타란티노의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옛날 얘기다. 물론 사건과 공간이 특정되어 있다 보니 많은 분들의 조언처럼 1960년대 할리우드의 시대상, 거기까지 힘들다면 영화의 소재가 된 찰스 맨슨 사건에 대해서라도 조금 알고 간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관람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의 농익은 연기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순식간에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