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부탁
<우리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 오래지 않아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다시 일을 시작하다 보니 한동안은 정신없이 일했던 것 같다. 새로운 직장에 조금씩 적응해갈 때쯤 마음속에 담아뒀던 <우리들>에 대한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당시에는 왜 '책'이라는 매체로 <우리들>을 알리겠다고 결정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학생 시절부터 다독가는 아니어도 책 읽는 것은 항상 좋아했고 당시에 조금씩 불기 시작한 독립출판의 바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일단 '책'이라는 매체가 정해지고 이것을 추후에 판매까지 하려면 영화사나 배급사의 도움이 있으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산을 넘어온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그 생각이 백두대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나는 '도움'을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허락'이었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작권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첫 회사에서 영화 홈페이지와 관련된 일을 해봤던 덕분에 몇몇 영화사와 배급사 담당자 번호가 있었던 나는 일단 전화부터 해보자는 생각에 <우리들>의 배급사인 엣나인필름에 전화를 걸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어렵지 않게 담당자와 통화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나는 호기롭게도 내가 이러이러한 책을 만들고 싶은데 혹시 스틸컷이나 홍보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획안이나 레퍼런스가 전혀 없는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 영화에 관련된 책을 만들겠다고 하니 아마 담당자도 적잖이 황당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전화를 받았다면 '세상에 참 심심한 놈이 많구나'혹은 '이 놈은 뭐하는 놈이지?'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잠시 이것저것 확인해본 담당자는 <우리들>은 영화관 상영이 종료된 상태여서 이쪽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순 없다며 <우리들>의 제작사 ATO의 담당자인 김순모PD님의 번호를 전달해주었다.
<우리들>의 제작사는 ATO, 배급사는 엣나인필름이다.
그렇게 번호를 득한 나는 잴 것 없이 PD님께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우리들>에 대한 이런저런 계획을 늘어놓는 내 말을 모두 들어보신 PD님께서는 쿨하게도 굉장히 좋은 생각인 것 같고 <우리들>의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움을 드리겠노라 말씀해주셨다. 나는 일단 구두로라도 뭔가 확보했다는 생각에 기뻤고 계획이 진척되면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이후 첩첩산중은 내 발로 직접 넘게 되었지만 당시 앞뒤 없이 걸었던 이 두 통의 전화가 없었다면 아마 index <우리들> 편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이용해 2차 저작물을 만들려고 한다면 저작권 소유자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혹은 유료로 이것을 구매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아보고 시작하는 게 좋다. 혹시라도 안일하게 생각하고 일단 일을 벌였다가는 돈과 시간을 모두 낭비하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