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 완료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by 정세현

필진들에게 글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가지가 본격적으로 필요해졌다. 글을 부탁할 때 까지는 '<우리들>에 관한 잡지'라는 큰 틀 외에는 잡지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잡지의 이름을 정하는 일이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틈틈이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잡지'에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했다. 공책을 펴두고 떠오르는 키워드를 한글로, 영어로 이것저것 끝없이 적어나갔다. 초기에 합류한 에디터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그중에서 별로인 것들은 빼고 괜찮은 것들은 조금씩 바꿔보는 작업을 수차례 진행하다 보니 잡지가 나갈 방향이 조금씩 그려졌다. 이 잡지는 비정기적이지만 지속성이 있어야 하며,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큐레이터이자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에게는 소장용으로서의 가치도 지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수많은 생각들을 거치고 거쳐 잡지의 이름은 'index'로 정해졌다. 어떤 영화를 '색인'한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고, 잡지 이름으로서 '색인'이 조금 딱딱하다고 느껴서 색인의 영어단어인 index를 쓰기로 했다. 이때부터 '좋은 영화를 색인'한다는 잡지의 슬로건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름과 슬로건이 명확해지자 달려가야 할 목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잡지명 후보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것 중에는 '강추'도 있었다.. '색인'으로 결정해서 다행이다.


목표점이 정해진 후부터는 내 차례가 돌아왔다. 6명의 필진들이 작성한 글은 잡지의 한 중간에 메인 콘텐츠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잡지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단순히 '비평'만으로 책을 채울 순 없었다. 6편의 비평글 앞뒤로 메인 콘텐츠를 감싸줄 다양한 부가 콘텐츠가 필요했다. 나는 <우리들>과 관련된 정보부터 시작해 index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영화소개, 배우소개, 윤가은 감독의 단편소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적어나갔다. 그리고 글을 적는 것과 함께 기획도 시작했다. 인쇄물을 기획해 본 적은 없었지만 다행이라면 다행히 전 회사에서 수십 개의 홈페이지를 기획하며 글과 이미지가 어떤 형태로 면에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은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시절부터 지겹도록 마주했던 ppt페이지가 그때만큼 부담스러웠던 적도 없는 것 같다. 한 땀 한 땀 접해본 적 없었던 매체를 기획하는 일은 도전적인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만드는 것의 격차는 생각보다 작지 않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파일.png
개인적으로 기획과 디자인은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ppt에 기획안을 작성할 때부터 디자인을 충분히 고민하며 기획했다.


그렇게 글과 기획안과 싸우기를 몇 달, 드디어 '잡지 기획안'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나왔다. 약 30페이지 정도의 ppt파일은 어떤 '결과물'이라기보단 일종의 '가능성'이었다. 다시 하라면 잠시 고민하게 될 것 같은 그 일을 당시에는 <우리들>이라는 영화에 대한 믿음과 필진 6명의 노고가 담긴 글에 대한 감사함, 혹은 미안함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필진 6명의 글은 나에게 이 책 비스무리 한 무언가가 반드시 세상의 빛을 보게 해야 한다는 자기 다짐을 부추기는 도구와도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기획안을 보며 나는 고지가 조금씩 보인다고 생각했다. 감히.


*독립출판 실전 Tip

가끔 툴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업물을 시각화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툴을 고르면 되는 것이고 혼자 작업한다면 더군다나 무엇으로 작업하든 도서 기획안을 만들 수 있다. 단지 이 단계에서 잘 보아야 하는 것은 실제로 글이 책에 올라갔을 때 어느 정도의 영역을 어떻게 차지할지를 충분히 고려해보는 것이다.

이전 03화글 좀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