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어떤 영화는 소재에 잡아먹히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소재를 발판 삼아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포드 V 페라리>는 정확히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포드는 차량 생산에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동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회사로 유명하다. 반면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정통 슈퍼카 브랜드 중 하나로서 아름다운 외관과 엄청난 성능으로 명성이 높은 회사다. 이렇게 완전히 반대편에 서있는 두 회사가 1966년 같은 레이싱 트랙에서 진검승부를 펼쳤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큰 틀에서는 당시 레이싱 트랙에서는 페라리를 이겨본 적 없었던 포드의 관점에서 전형적인 언더독의 도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안정적이고 익숙한 바구니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다소 뻔한 기승전결을 보유하고 있는 <포드 V 페라리>의 서사는 훌륭한 리듬감을 보여주며 힘을 주고 빼야 할 지점에서 정확하게 관객들을 공략한다.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들이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를 알고 있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히 알겠다. 두 남자를 연기한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포드 V 페라리>에서 두 남자의 관계가 대단히 깊이 있게 묘사되거나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두 캐릭터는 152분 동안 각자가 있어야 할 지점에 정확히 서있다. 그리고 각자가 있어야 하는 그곳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의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영화가 너무 질척거리지도, 너무 말라버리지도 않도록 만들어낸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게 '실력'이 아닌가 싶다.
엄청난 크기의 로봇들이 전투를 벌이고 무시무시한 출력을 내뿜는 차량들이 달려도 따분한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마치 영화관을 통째로 레이싱 대회 한복판에 던져둔 것처럼 생생한 연출과 사운드로 무장했다. 제임스 맨골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르망 24시 레이싱 대회뿐 아니라 자동차가 달리는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담아낸다. 너무 정신없지 않으면서 충분히 속도감 있는 화면전환, 내가 보고 싶은 딱 그 앵글을 잡아주는 카메라,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싱영화에서 특별히 그 위치가 더 격상되는 생생한 배기음 사운드는 <포드 V 페라리>의 장르영화적 존재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자동차 엔진의 분당 회전수를 나타내는 RPM은 일반적인 가솔린 승용차에서 6,000을 넘는 일이 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포드 V 페라리>는 그저 그런 레이싱 영화를 넘어 7,000RPM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영화다. 실화를 기반으로 매끈하게 다듬어낸 이야기,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 무엇보다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레이싱 장면들은 관객이 기대하는 수준을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