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구름 Dec 19. 2019

고흐, 영원의 문에서, 조용하고 깊게 만나다

fresh review

Intro

나는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인간 '고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고흐라는 인물을 조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관람하기에 썩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건 알 것 같다.


1955년생의 윌렘 대포는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고 있다. 100여 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증명해온 이 대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자연과 소통하는, 혼란스러워하는, 기뻐하는, 외로움을 느끼는 고흐를 모두 자기 내면으로 충분히 깊게 끌어들인다. 윌렘 대포는 그 강렬한 마스크에도 불구하고 고흐와 영혼의 영점을 맞춘 사람처럼 깊지만 요란하지 않게 고흐가 되었다. 상이라는 것은 오묘한 성질이 있어 때로는 그 상의 가치가 배우가 선보인 연기에 넘칠 때도 있고 반대로 미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번 경우에 윌렘 대포가 받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볼피컵 남우주연상은 후자에 가깝다. 당신이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본다면 윌렘 대포를 찾느라 애를 먹거나 아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고흐만 존재한다.

윌렘 대포


윌렘 대포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머리가 띵할 정도로 독특한 연출이 없었다면 윌렘 대포의 연기는 지금보다 죽었을 것 같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인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와 극도로 인물에게 다가가는 초근접 촬영, 관객이 마치 고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1인칭 촬영의 활용은 실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영화 전체가 고흐의 정신 상태를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더불어 화면에 녹아드는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음악은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실력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줄리안 슈나벨


결론적으로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조용하고 느리지만 깊이 있게 관객과 고흐를 마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그 만남까지의 과정이 친절하거나 발랄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도전적인 연출기법은 분명히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대단히 적절한 방식이었지만 관객 친화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윌렘 대포의 연기 역시 한치의 의심 없이 훌륭하지만 고흐라는 캐릭터 자체가 다른 인물과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항상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다 보니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는 침전을 거듭한다. 이처럼 고흐를 만나러 가는 과정은 어둡고 고되지만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111분의 여정이 끝날 즈음에는 분명히 빛의 화가인 고흐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