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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06.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온돌 같은 위로

column review

Intro

온돌이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난방방식인 이유는 낮은 곳에서부터 온기를 만듦으로써 찬 공기가 자연스럽게 위쪽으로 순환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온돌처럼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위로가 배어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했던가, 홍상수 감독의 PD로서 오랜 시간 일하고 한동안 일거리를 구하지 못했던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가 바탕이 되어 탄생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40살이 다 되도록 PD일만 하고 살았던 찬실이의 이야기다. 갑자기 백수가 된 찬실이의 돈 버는 얘기, 남자 만나는 얘기, 살아나가는 얘기를 두루두루 엮어내는 영화는 오롯이 찬실이의 삶을 얘기하는데도 조목조목 마음을 건드린다. 나는 한 번도 PD가 되어본 적이 없고, 아직 40이 되지도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96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찬실이의 마음과 동화되었다. 누군들 한 번쯤 삶의 바닥을 경험해봤다면, 바닥부터 올라오기 위한 힘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으리라.

이야기


배우는 어떤 힘이 있는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1년에 수십 편의 영화를 보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강말금이 연기한 이찬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인생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모습부터 별것 아닌 일에도 때로는 기쁨을 느끼고,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마음의 방향이 돌아선 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충무로에 그런 연기를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더 늦기 전에 그런 배우를 발견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강말금이라는 배우는 영화를 끌고 갔고, 관객의 마음을 끌고 갔고, 충무로를 끌고 갈 것이다.

강말금


신파는 없고 공감만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방안의 온도를 28도로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난로를 땔 수도 있고, 온돌을 틀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의 눈물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소재와 연출로 눈물샘을 자극할 수도 있겠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공감에 눈물이 날 수도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후자의 정확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담백하게 연출되고 인물 간의 관계도 질척거리지 않지만 어느 순간 찬실이와 함께 울고 웃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공감'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은 곧 내 마음이 된다. 사실 '신파극'이라는 것 자체가 그 시대를 함께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시작된 극의 형식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신파극의 오리지널리티를 제대로 전수받은 셈이다.

공감


온돌 같은 위로

결론적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작은 영화도 큰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선례를 명징하게 남기는 작품이다. 한 명도 버려지는 분량 없이 요목조목 엮이는 캐릭터부터 은근히 트렌디한 편집, 덤덤하지만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는 서사는 김초희 감독의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이 엿보이는 한편 각본가로서의 미래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수백억짜리 건조한 영화들의 위로에 지친 관객이라면 찬실이가 건네는 자연스러운 위로를 받아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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