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뜻밖의 완성도

column review

by 정세현

Intro

사실 이번 여름 소위 대작이라고 불리는 영화 중에 덕혜옹주를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시사회로 만난 덕혜옹주는 생각 외로 즐거움과 놀라움을 모두 선사했다. 개인적으로는 덕혜옹주는 이번 여름 박스오피스의 복병이 되기 충분한 것 같다.


이야기, 기름기를 빼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덕혜옹주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덕혜옹주의 생애를 꽤나 디테일하고 밀도 있게 다룬다. 인물, 그것도 혼란한 시대의 옹주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는 영화는 삼천포로 빠질 법도 한 이야기를 잘 정리하여 옹주에게 명확하게 포커스를 맞춘 채 흘러간다. 그렇다고 등장인물이 적으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덕혜옹주에는 조연급 인물들이 다수 출연함에도 중심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주거나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 덕혜옹주는 담백하게 그리고 한 방향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나간다.

ㄷ2.jpg 담백,


손예진, 꽃피다

손예진은 좋은 배우이고 이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솔직히 필자는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을 보며 이 배우의 한계가 여기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손예진을 보며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덕혜옹주의 손예진은 실로 훌륭하다. 결코 쉽지 않은 감정연기의 선을 잘 부여잡고 가는가 하면 비밀은 없다에서 아쉬웠던 과한 연기가 사라졌다. 덕혜옹주에 감정이 복받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은 관계로 후반부에는 피로감이 올 법도 한데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감정선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손예진이었다.

ㄷ7.jpg 훌륭한 연기,


박해일, 그리고 조연들

박해일이 연기를 잘 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인정할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훌륭한 조력자인지는 오래간만에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덕혜옹주가 원탑 주연인 영화에서 박해일은 주연급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100% 수행한다. 감정의 폭이 많이 오르내리는 덕혜의 연기도 쉽지는 않지만 오히려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는 김장한의 연기 난이도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박해일은 노련한 배우답게 감정의 폭을 조절하고 그러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다. 덕혜옹주에서 두 개의 큰 축을 이루는 인물 중 한 명으로서 박해일이 영화에 기여한 부분은 지대하다. 그 외에 덕혜옹주에는 다양한 조연들이 출연하는데 특히 극 중 비중이 큰 편인 라미란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한편 정상훈은 원래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영화적 캐릭터가 의외로 감칠 나게 녹아들며 색다른 캐릭터를 완성한다. 특히 악역 윤제문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아주 색다르진 않은 캐릭터임에도 역시 어떤 배우가 얼마나 맛깔나게 표현하는지에 따라서 캐릭터의 퀄리티가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ㄷ3.jpg 빈틈없는 조합,


허진호, 뜻밖의 재발견

허진호가 로맨스물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를 이 정도로 완성도 있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미술팀, 음향팀의 작업도 상당한 수준이고 연출 또한 군더더기 없다. 군데군데 신파가 묻어나긴 하지만 이 또한 질척거리거나 시간을 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특히 손예진과 박해일의 캐릭터 사이에는 로맨스적 감정이 끼어들기도 하는데 과하지 않게, 그리고 개연성 있게 풀어냈다. 허진호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은 포인트. 한편 필자가 영화를 감상한 이후에 더 놀랐던 사실은 영화 덕혜옹주가 생각보다도 훨씬 실제 덕혜옹주의 역사적 사실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역사라는 주제 자체가 영화상에서 100% 사실이긴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 허진호는 넓고 디테일한 사실이라는 구조에 그가 만들어낸 인물과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붙여냈다.

ㄷ6.jpg 다음 작품도 기대!


결론, 올여름의 다크호스

현재 극장가는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제이슨 본 등 기라성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하다. 덕혜옹주는 개봉일도 늦은 편이고 사이즈도 앞선 영화들에 비하면 작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울림만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국민들에게 잊혀 있던 덕혜라는 옹주, 물론 역사적으로 황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지만 덕혜라는 인물 또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당시 자신이 처했던 상황에서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지, 덕혜옹주는 영화적으로 유려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뜻밖에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덕혜옹주는 충분히 다크호스의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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