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원맨쇼'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 날뛰는 사람을 비꼬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정말 뛰어난 사람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더 파더>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선보이는 연기는 이런 것이 좋은 의미의 '원맨쇼'라는 것을 오감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이 노배우는 토르에 나오는 오딘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1991년 <양들의 침묵>에서 단 15분간 출연한 후 그 해에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던 안소니 홉킨스의 한국 나이는 무려 84세, 누군가는 거동조차 힘들 나이에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가히 충격적일 만큼 강렬하고, 세심하고, 아름답고, 깊이있다. 무려 네 개의 형용사를 쓰고도 그의 연기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1968년에 데뷔한 한 남자는 <더 파더>에서 여전히 자신이 더 보여줄 것이 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이 영화는 시작점과 도착점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안소니 홉킨스의 로드무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중반까지 갈 것도 없이 관객들은 안소니 홉킨스가 첫 마디를 때는 순간부터 그의 여행에 자연스럽게 동행한다. 그리고 그 여행은 인생의 97분을 기꺼이 투자할 만큼 매력적이다.
<더 파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의 연출과 서사가 전반적으로 안소니의 기억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안소니가 기억을 유지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안소니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안소니 시점에서 따라간다. 덕분에 관객들은 안소니가 혼란할 때 함께 혼란하고 안소니가 안도할 때 함께 안도한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반강제적으로 관객들을 안소니의 머릿속으로 욱여넣는다. 만약 당신이 안소니와 그 주변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아마 실패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안소니의 시점으로 창조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 편안히 마음을 비우고 안소니가 되어본다면 의외의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간혹 영화의 배경이 단순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더 파더>는 영화가 담기는 배경이 한 명의 인물과도 같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더 파더>에 등장하는 안소니의 집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로운 요소들을 담뿍 담고 있다. 집 안에 존재하는 공간, 물건, 요소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머금은 채 끊임없이 표정을 바꾼다. 안소니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집이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더 파더>에 등장하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관객들은 아마 답답함을 느낄세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어떤 공간을 보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안소니가 그랬던 것처럼.
결론적으로 <더 파더>는 문자 그대로 안소니라는 한 남자가 무대 위에서 오롯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쇼다. 물론 안소니 홉킨스의 완벽한 연기가 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사가 충분히 매끄럽지 못하거나 1차 관람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요소들, 간혹 감독이 욕심을 부린듯한 서사적 공백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났을 때 그런 단점들은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안소니의 기억을 가지고 안소니의 집에 있었던 안소니가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