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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06. 2021

미나리, 미국에서 찾은 한국 맛

column review

Intro

언젠가 뉴욕에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당시 한인타운에서 먹었던 한식은 분명히 익숙한 맛이었지만 고향에서 먹었던 그것과 똑같은 맛은 아니었다. 물도 재료도 타지에서 난 것들로 만든 음식은 조리법이 같더라도 오묘하게 다른 맛을 낸다. <미나리>도 그런 오묘한 맛을 내는 영화다.


긴장감을 만드는 연출

이 영화가 미국적인지 한국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둘째 문제다. 나는 리 아이작 정 감독이 만들어낸 <미나리>의 긴장감을 가장 먼저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감상한 많은 사람들이 '잔잔함'을 말한다. 이 부분에 나 또한 동의한다. <미나리>는 잔잔한 영화다. 하지만 호수의 표면이 잔잔하다고 해서 그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 감독은 드라마 영화가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어떤 식의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팽팽한 선으로 엮여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이 선을 건드리거나 잡아당기는 순간 관계의 추는 반드시 기울고 관객의 마음엔 물결이 친다. 긴장감이란 건 애초에 어두컴컴한 방안이나 칼을 든 괴한 앞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관계적 긴장감을 견뎌왔던가?

긴장감


미국 그릇

긴장감 가득한 화면에서 슬쩍 배경을 둘러보면 곧바로 보이는 것은 미국적인 요소들이다. <미나리>의 배경이 미국 아칸소인 만큼 주인공 가족이 사는 공간, 하는 일, 만나는 사람들은 당연히 미국적이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든 <미나리>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Made in USA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 지점은 한국관객들에게 오묘한 맛을 선사한다. 같은 음식을 다른 그릇에 담아 먹을 때 분명히 맛은 같은데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미술팀의 훌륭한 작업이 돋보이는 소품과 환경, 그리고 아역배우들의 유창한 영어 연기는 서사를 담는 그릇에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미국 그릇


한국 맛

연출과 배경까지 두루 감상하다 보면 관객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미나리>가 뿜어내는 한국 맛을 음미하게 된다. <미나리>가 담고 있는 음식은 의외로 다양하다. 꿈, 사랑, 가족애 등 다양한 반찬들이 두루 섞여있는 <미나리>는 이 모든 부분에서 한국적이라고 할만한 깊은 맛을 낸다. 그리고 이런 맛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호흡, 그리고 그 호흡이 빨아들인 후 내쉬는 이야기의 농도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 윤여정이 보여준 연기는 그 자체로 영화의 메시지가 될 만했다. 가족 구성원의 한 귀퉁이인 동시에 한 중심에 서 있는 윤여정의 캐릭터는 본인이 등장하는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재미있게, 독특하게, 긴장감 있게 만든다. 윤여정의 이번 연기는 단순히 '잘했다', '좋았다'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아마도 감히 추측하건대 한국인들에게 있어 '엄마'와 '할머니'라는 존재가 그토록 다채롭고도 저릿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맛


맛있는 영화

결론적으로 <미나리>는 그릇의 출신지도, 내용물의 출신지도 따질 필요 없는 '맛있는 영화'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미나리>는 그 수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영화의 제목처럼 자신만의 깊은 향과 맛을 가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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