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로드무비는 원래부터 목적지보다 주인공의 여정에 초점이 맞춰진 장르다. 그런 점에서 <노매드랜드>는 표면적인 프레임으로 보나, 그 속에 담긴 서사로 보나 진정한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2개나 수집한 57년생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자신의 트로피 수납장 빈 공간을 그대로 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노매드랜드>에서 펀으로 분한 맥도맨드는 대사의 양이 많지도,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미국의 광활한 대지에 녹아든 하나의 작은 생명체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아주 강인한,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연약한 생명체. 어떻게 동시에 그런 얼굴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동자와 발걸음을 보고 있다 보면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60년이 넘는 삶의 여정을 지나온 맥도맨드에게 어쩌면 유랑자 펀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정확한 사실은 그녀가 진정한 배우라는 점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집과 생업을 잃고 국토를 떠돌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노매드랜드>는 분명히 픽션임에도 그 생동감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선명하다. 비록 건물로 된 집은 없지만 자신이 머무는 집을 직접 운전하며 다니는 유목민들의 삶은 자유로워 보이는 동시에 서글프다. 영화는 좌절과 상실을 경험한 펀과 주변 사람들을 마냥 불쌍하게 그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영화의 텐션은 결코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끊임없이 침전하지도 않는다. <노매드랜드>를 채우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길을 담담하지만 무게감 있게 지리밟고 나아간다. 어쩌면 대부분의 슬픔은 호들갑스럽지 않게 길을 따라 흐르는 시간에 흘려보내는 게 아니었던가, 그렇게 여러 명의 진정한 여정이 <노매드랜드>를 가득 채운다.
<노매드랜드>를 채우는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잔잔하지만 깊숙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영화는 사람들 간의 연대,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삶을 대하는 태도 등 다양한 가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결코 욕심부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광과 배경음,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은 영화 속 노을처럼 비스듬하지만 따뜻하게 화면을 채운다.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쉽지만 그것이 실제로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노매드랜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결론적으로 <노매드랜드>는 펀과 주변 사람들의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얘기하는 진정한 로드무비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유목민들의 얘기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이유는 각자가 사는 삶의 방식은 달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가치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을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에게, 그리고 영화를 여행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나 또한 영화 속 대사로 인사하고 싶다. "길에서 다시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