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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y 20. 2021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fresh review

시리즈물이 숫자 9를 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달려온 길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무려 2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이 시리즈가 이번 편에서 얻은 것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더 눈에 띈다.


때려 부수는 액션영화에서 개연성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액션의 허구성이 영화적 허용치를 벗어나는 순간 그 영화는 '액션'이라는 장르를 벗어나 '판타지'물이 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개연성을 버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번 더 얼티메이트는 단지 액션뿐만 아니라 영화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와 과거사의 개연성까지 깡그리 무너뜨리며 선을 넘는다. 수많은 액션영화들이 캐릭터의 힘을 연료 삼아 시리즈를 늘려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분노의 질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취하며 긴 시간 이어져왔지만 이번만큼 전작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역사와 상관관계의 이해가 강요되는 편도 없었던 것 같다. 뇌를 비우고 봐야 할 블록버스터 액션영화가 왕좌의 게임에 버금가는 사전학습이 필요하다면 각본가와 연출가는 본인들의 편리함을 위해 관객들에게 짐을 지운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


그럼에도 더 얼티메이트에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가져야 할 미덕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이용한 다양한 액션과 사실적인 충돌씬들은 확실히 시리즈의 명맥을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시리즈 넘버링에 걸맞게 거대해진 스케일과 다양한 해외 로케이션도 관객들의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전편들부터 퓨어함이 실종된 자동차 액션이 발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1편처럼 담백한 카체이싱이나 자동차 액션을 기대하긴 힘들더라도 이번 얼티메이트의 차량 액션씬들은 양념이 과하게 들어간 나머지 '차량액션'이라기 보단 '차'가 나오는 액션씬을 보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에 과함만 더해지고 절제가 없다 보니 화려한 액션씬을 보면서도 손에 땀이 쥐어지기보단 눈꺼풀에 힘이 풀렸다.

액션


결론적으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스케일과 등장인물만 하염없이 늘어나며 시리즈의 이름만 빌려온 헐리웃 블록버스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단순한 스토리라인과 그다지 크지 않은 스케일 안에서도 한 장면에 대한 고민과 깊이가 있는 명작이었다. 이미 다음 편이 예고된 이 프랜차이즈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앞서 길을 닦아놓은 전편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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