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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an 04. 2022

드라이브 마이 카, 삶은 계속된다

column review

Intro

영어에 'Life goes on'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글로 번역하면 '삶은 계속된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모두에게 '회복'이 어려운 이유는 누군가 그 과정을 함께하거나 도와줄 수는 있을지언정 마지막 계단은 결국 혼자 올라야만 완성되기 때문이다. '다 털고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고 '삶을 계속 걸어나가자'라고 담담히 말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메시지는 그렇기에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진다.


각본의 힘

경차와 대형차를 움직이는 엔진의 크기가 달라야 하듯 179분 동안 끊임없이 서사가 전진하려면 각본의 힘은 필수적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설 원작을 가지고 있는 작품답게 촘촘하고 빈틈없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등장인물의 숫자도, 에피소드의 숫자도 적지 않은 영화는 정직하게 시간순으로 흘러가며 모든 장면을 천천히 씹어서 소화시킨다. 안톤 체호프의 유명 희곡인 '바냐 아저씨'의 연극을 준비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하기에 해당 작품을 아는 관객이라면 그 감동이 훨씬 더 클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가 이끄는 대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이 영화의 각본이 가진 메시지의 힘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은 기억할만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힘을 가진 각본이 칸영화제 각본상을 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본


연출의 힘

많은 연출가들이 좋은 원작을 탐하지만 텍스트를 성공적으로 화면에 옮긴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는 비록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작을 모르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이 각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현시킨 연출이었다는 것을 믿는다. '믿음'이란 참으로 연약한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명확하다. 배경음을 과할 정도로 배제함으로써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지루할 만큼 정적인 카메라 무빙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믿음'을 만든다. 시원하게 때려 박는 연출도 나쁘진 않으나 이토록 섬세한 연출은 그것대로 또 다른 경지를 만들어낸다.

연출


배우의 힘

각본이 자동차의 엔진이라면 배우는 바퀴다. 아무리 엔진이 좋아도 4개의 바퀴가 좋은 합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차는 움직일 수 없다.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로 구성된 <드라이브 마이 카> 출연진은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영화의 몰입을 더한다. 극 중 유독 돋보이는 배역이 두 명 있는데 긴 호흡의 영화가 흔들리지 않게 끌고 가는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그리고 영화 필모그래피가 전무한 한국인 배우 박유림이다. 극 중 수화를 하는 연극배우를 연기하는 박유림은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등장할 때마다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외모가 너무 아름답거나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해서 화면을 장악하는 배우는 종종 있었지만 눈빛과 연기의 톤 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배우는 오랜만이다.

배우


삶은 계속된다

결론적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풍성한 영화적 경험으로 전달하는 영화다. 서사의 특성상 중간중간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구간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영상과 연기를 음미하다 보면 179분을 이 정도로 가치있게 채우는 영화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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