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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an 29. 2022

해적: 도깨비 깃발, 사상누각

fresh review

사상누각은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 즉 기초가 허약해 금방 무너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서사가 있는 영화는 기술 시연 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물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왜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서사가 생길 수 있겠는가?


<해적: 도깨비 깃발>에는 강하늘, 한효주, 권상우를 비롯해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사실상 다른 영화지만 명목상 전편인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네임벨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효주는 한효주를 연기할 뿐 캐릭터가 되지 못하고, 강하늘은 어딘지 맞지 않는 옷을 입지도 벗지도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의 강력한 씬 스틸러가 되어야 할 악역, 권상우는 내가 알던 권상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단순히 연기를 못하는 문제면 차라리 나을 텐데, 김정훈 감독은 지금껏 쌓아온 포트폴리오가 무색하도록 캐릭터에 이야기를 입히는데 실패한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누구 하나 '왜'에 대한 답이 명쾌하지 않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는 힘을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진다.

유명 배우들


액션과 그래픽도 마냥 만족할 만하진 않다. 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영화가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기에 <해적: 도깨비 깃발>이 잘 해낸 부분은 칭찬해도 좋을 것 같다. 칼을 활용한 액션씬, 배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의 연출은 큰 스크린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만약 이 영화가 시리즈가 된다면 이런 장점들은 계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한국적인 배경을 잘 살려서 이야기를 녹여냈다면 훨씬 더 찰진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은데, <해적: 도깨비 깃발>의 배경은 분명히 조선시대인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길 잃은 배경 설정이 개연성을 너무 흠씬 두드려패는 바람에 흔들리는 동공과 복잡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었다는 점은 대단히 아쉽다.

어디가?


결론적으로 <해적: 도깨비 깃발>은 꽤나 볼만한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기초공사가 너무 부실한 영화다. 캐릭터라이징도, 탄탄한 배경 설정도 없이 액션과 그래픽으로 무엇인가 무마하려다 보니 그나마 있는 장점조차 함께 무너지는 느낌이다. 좋은 팝콘영화는 스토리가 '없는'것이 아니라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관객이 설득되지 않았는데 혼자 앞으로 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해적: 도깨비 깃발>이 조금만 더 관객과 발걸음을 맞췄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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