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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y 09. 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용기 있는 겁쟁이

fresh review

개인적으로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사랑했던 이유는 수많은 캐릭터의 색깔을 지키면서도 큰 흐름이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넓지만 목표가 명확한 강처럼 흘렀기에 맥락과 개연성이 어느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바다를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바다를 만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뜻하지만 요점은 선택의 폭을 무한대로 넓혀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면 용기 있게 보일 수 있지만 대단히 공급자 관점의 선택이다. 마블은 이제 본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를 살려낼 수도, 돈이 되지 않는 캐릭터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 외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이런 마블의 선택과 결심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그들은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기를 포기했고 그럼으로써 영화는 갈 길을 잃었다. 정확히는 길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마블이 제일 잘했던 일, 어떤 경우에도 개연성을 지켜내고 선을 넘지 않는 미덕을 완벽하게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디로 가는거야?


영화 자체가 재미없냐고 묻는다면 애매하다고 답하겠다.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은 흥미롭고 연출의 퀄리티는 마블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몇몇 장면은 황홀하고 멋지며 배우들의 열연은 여전히 훌륭하다. 여기에 더해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들어낸 기괴하고 호러스러운 분위기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지언정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멀티버스를 활짝 열어젖힘으로써 대혼돈을 표현하기 위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오고, 새로운 캐릭터를 얼렁뚱땅 소개하고, 기존의 캐릭터들을 마음대로 써먹는 것은 대환장할 노릇이다. 그나마 과거의 마블과 캐릭터들이 쌓아올린 명성과 믿음이 없었다면 '대환장'이라는 표현조차 관대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혼란하다 혼란해


결론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나름 최선을 다했고, 용기 있게 바다로 나아갔지만 최고가 되지 못했고, 겁쟁이처럼 어떤 선택지도 선택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마블의 세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고 우리가 사랑했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기존 영웅들은 현실적으로 늙어가기에 마블에게 있어 이런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관객들의 사랑을 당연히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마블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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