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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n 01. 2022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공룡 낭비

fresh review

93년 개봉한 <쥬라기 공원>이 명작인 이유는 단순히 공룡이 나타나고 물어뜯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룡'이라는 소재 자체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 매력적인 소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소재가 그렇듯 감독이 이 소재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영화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을 보며 공룡이 몇 종류나 나오는지는 영화의 재미와 전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실수는 수많은 공룡들이 서사의 흐름에 하나도 붙어있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공룡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전제는 쥬라기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안일하고 실패한 전제조건이다. 얼렁뚱땅 만들어낸 배경에서 앞뒤 없이 튀어나오는 공룡들은 경이로움도 놀라움도 두려움도 자아내지 못한다. 관객들이 공룡보다 더 크고, 무섭고, 놀라운 생물들을 볼 수 있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단순히 많은 공룡을 멋진 CG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관객들이 93년도와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 역사적인 시리즈를 잘못 이해해도 한참 잘못 이해하는 일이다.

실수


그리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이렇게 잘못 이해한 시리즈의 요점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영화는 되도록 많은 공룡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멋진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멋지다'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될 수 있지만 이번 경우의 멋짐은 말 그대로 화면이 멋져 보이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원작의 팬들이라면 설렐만한 등장인물, 로라 던과 샘 닐은 물론 제프 골드브럼을 한자리에 모았지만 이들이 왜 뭉쳐야 했는지, 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한 개연성은 백악기에 내다 버렸다. 그렇다고 월드 시리즈의 진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행동이 딱히 이해되지도 않는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서사는 조각나고 관객들의 집중력도 함께 조각난다.

로라 던과 샘 닐


결론적으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쥬라기'시리즈의 이름을 빌려 공룡을 낭비하는 영화다. 난 이 작품의 연출과 액션이 준수했다고 생각한다. 등장하는 공룡들도 다양했고 몇몇 장면에서 오리지널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한 편의 영화로서 서사와 잘 엮이고 녹아들어야 한다. 무려 30여 년을 이어온 시리즈의 장대한 마지막이 이런저런 액션의 나열에 그쳤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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