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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n 08. 2022

브로커, 근데 이제 CJ가 묻은

fresh review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양한 방식의 자기복제를 통해 성장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로커>는 복제마저도 처절하게 실패한 작품이다. 영화가 이렇게 된 이유를 CJ만의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에서 CJ를 제거했을 때보다 감독의 이름을 제거했을 때 이 결과물이 훨씬 납득할만하다.


<브로커>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 일 것 같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소모되어 사라진다. 시작부터 별로 없었던 개연성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존재감을 잃는다. 끊어야 할 곳과 더 가야 할 곳을 모르는 편집점은 난잡하고 당황스럽다. 무엇보다 129분짜리 영화를 보면서도 이야기에 마음 붙일 구석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봐왔던 감독의 전작은 위에 나열한 모든 요소의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디에


이쯤에서 범인으로 CJ를 지적하는 이유는 결국 영화를 담은 그릇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 눈물이 없었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영화를 '신파'라는 그릇에 넣으려고 했던 적이 없다. <브로커>에는 분명히 좋은 장면도 있다. 장면 장면의 점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꾸역꾸역 이어놓은 선을 보면 아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눈물을 원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이미 감독의 이름은 무의미해졌다. 그렇다고 영화가 원하는 것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이 문제다. <브로커>는 관객이 원하는 것도 주지 못하고 영화가 원하는 것도 얻지 못했다.

범인은 어디에


결론적으로 <브로커>는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보더라도 기대 이하인 영화다. '차라리 눈물샘을 후려치는 신파였다면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을 모르는 관객이었다면 아마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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