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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Aug 11. 2022

헌트, 스타일 좋은 원석

fresh review

세상엔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타고나는 것이 있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다. 서사와 연출의 기법은 누구라도 배울수록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누가 가르쳐줘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정재 감독의 '스타일'은 상당히 신선하고 괜찮았다.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총기를 사용한 액션장면이 대단히 세심하면서도 충분히 높은 텐션으로 연출된다는 점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생각보다 많은 영화들이 총기액션 장면을 밋밋하게 만들곤 한다. 총을 쏜다는 것 자체가 다급하고 특수한 상황임에도 이것이 화면으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헌트>에서 총이 등장하는 장면은 긴장감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개연성을 과하게 잃지 않는다. 두 번째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한국형 신파와 의미 없는 늘어짐을 철저히 배제하고 서사의 흐름에 온전히 집중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125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딱히 버려지는 장면이 없다. 모든 씬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확실히 보는 맛이 더해진다.

총기액션


하지만 감독 데뷔작의 한계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지금 상태로 <헌트>를 '보석'이라 칭하기엔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중반까지도 잘 붙지 않는 캐릭터들, 여러 겹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해가 쉽지 않은 서사, 충분히 매끄럽다고 보긴 어려운 편집점이 그것이다. 특히 복잡하게 구성된 서사는 관객들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캐릭터들에 대한 감정이입까지도 방해하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박평호와 김정도의 입장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인데다 중간중간 플래시백까지 곁들여져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쟁터에서 무릎으로 이야기를 더듬어 가는 기분이다. 두 명의 주연이 이야기를 확실히 이끌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숫자가 많고 유명 배우가 대거 투입된 것도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눈이 즐겁긴 하나 관객이 흘려 넘겨야 할 캐릭터와 기억해야 할 캐릭터가 구분되지 않는다.

어렵군..


결론적으로 <헌트>는 스타일 좋은 원석이다. 분명히 아직은 깎이고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타고난 스타일이 빛난다.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식과 초반에 캐릭터를 끌어올리는 능력을 잘 갖추고 몇 가지 기본기들만 출중해진다면 몇 년 뒤에 우리는 충무로에 존재하지 않았던 스타일을 가진 감독을 보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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