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클래식
매거진 '언제나 클래식'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자극적인 맛은 중독성이 있다. 먹는 순간 짜릿하고 맛있게 느껴질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또 생각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눈과 귀를 강하게 자극하는 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다. 잘 나간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영화들은 끊임없이 개봉하고 영화관과 OTT에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여기 재료 하나하나를 맑은 물로 정성스럽게 씻고 소금조차 넣지 않은 채 푸욱 우려낸 듯한 영화가 있다. 화면이 얼마나 더 쨍한 색감을 보여주는지 경쟁하는 시대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색은 단 두 가지, 흑과 백 뿐이다. 의심의 눈초리로 영화를 한 입 베어 물면 오랫동안 자극에 익숙해진 미각은 쉽사리 재료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두 입, 세 입을 씹으면 비로소 깨닫는다. 본래 영화를 구성하는 재료의 맛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대사'의 맛이다. 실제 인물인 윤동주와 송몽규가 정확히 그 시대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윤동주가 쓴 시들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쓰였는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동주>는 담담하고 개연성 있게 대사를 다듬는다. 영화 내내 강하늘의 목소리로 차분히 얹히는 윤동주의 시구는 억지스럽지 않게 영화의 행간을 파고든다. <동주>의 대사는 마치 날카로운 식칼이 조심스럽게 재료를 다듬 듯 영화 전체를 깎아 나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각본도 제대로 읊조리지 못하면 요리가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를 채우는 ‘대화'는 중요하다. 인물과 인물이 나누는 대화가 다채롭고 흥미로울 때 관객의 집중력은 아늑하게 자리 잡을 곳을 찾는다. 주인공인 윤동주와 송몽규 외에도 적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동주>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서사를 전진시키고 분위기를 만든다. 약한 불에서 천천히 졸인 국물이 깊은 맛을 내듯 싱싱한 대사는 대화를 통해 인물 사이사이에 스며 깊은 맛을 풍긴다.
완성된 음식은 마지막으로 어떻게 관객 앞에 놓일 것인가의 기로에 선다. <동주>를 차리는 이준익 감독의 선택은 마지막까지 정갈하고 선을 지킨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무엇에 집중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동주>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각적 자극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메시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윤동주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러워서”라고 말할 때 영화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라고 보채지 않는다. 이미 <동주>에서는 제대로 된 재료의 향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조미료는 처음부터 ‘재료'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