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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Feb 25. 2023

타르, 솔로가 괜찮은 이유

column review

Intro

영화는 연기를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너무 좋은 연기는 가끔 영화라는 틀에 담기지 않을 때가 있다. <타르>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선보이는 연기는 어떤 수식어를 써도 식상할 만큼 훌륭함의 정도를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케이트 블란쳇이라서.

하나의 감정, 하나의 동작, 하나의 장면을 연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관객들이 온전히 가상의 캐릭터를 받아들이려면 연기와 연기 사이의 맥락이 느껴져야 한다. 케이트 블란쳇은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의 삶 전체를 집어삼킨 느낌이다. 그녀에게는 빌드업 시간조차 필요 없다. 오프닝이 끝나고 화면에 케이트 블란쳇이 보이는 순간부터 관객의 눈에 보이는 인물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뿐이다. 영화가 흐름에 따라 타르의 삶은 화면에 넓고 깊게 스며든다. 과거 회상 장면이나 지리한 옛날 얘기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은 온전한 캐릭터 전부를 관객 앞에 풀어낸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이라서.

<타르>의 화면은 대단히 정적이다. 삼각대 하나와 카메라 한대로 촬영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화면의 구도나 무빙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사는 또 어찌나 많은지 한 번 대화가 시작되면 시간이 하염없이 흐른다. 오케스트라와 관련된 영화임에도 악기가 연주되는 장면을 제외하면 배경음조차 없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지루하냐고? 오히려 빠져든다. 희한할 만큼 긴장감이 돈다. 심지어 알아듣지도 못할 전문용어마저 서사의 일부처럼 녹아든다.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 손짓, 입모양 조금 과장하자면 들숨과 날숨까지 서사가 된다. 아, 의자에 앉아서 대화만 해도 화면은 가득 찰 수 있구나.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이라서.

영화 초반에는 인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반이 넘어가면 이야기는 속도를 붙여 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관객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전에는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인 연기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나아가기 시작하면 관객들이 받아들인 타르의 캐릭터가 볼거리 그 자체다. 물론 웅장한 베를린 필하모니와 타르의 자아를 그대로 투영하는 공간들, 의상도 대단한 볼거리다. 연기하는 자아, 입은 옷, 서있는 곳까지 모든 것이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볼거리가 된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이라서.

결과적으로 <타르>는 정말 새삼스럽게도 케이트 블란쳇이 어떤 배우인지를 꼭꼭 씹어서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리듬감이나 주제가 관객에 따라 취향을 탈수는 있겠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관람하고 나면 영화 선택에 있어 취향은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요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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