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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09. 2023

스즈메의 문단속, 다른 맛 곰돌이 젤리

fresh review

감독의 실력이 작품에 녹아들고 인장이 찍혀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본인의 전작들이 가지고 있는 틀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수차례 반복된다면 각각의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역시'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떠올렸을 때 관객들의 머릿속을 채우는 거의 모든 요소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눈이 호강하는 작화부터 더욱 유려해진 연출, 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는 음악과 꽤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클라이막스까지 역시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이 잘하던 것은 놓치는 법이 없다. 여기에 일본의 현재 상황을 조명하며 따뜻하게 주물러낸 위로가 담긴 메시지는 분명히 일종의 전진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역시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보기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보여주는 틀과 서사는 <너의 이름은>이후에 <날씨의 아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주제와 등장인물들은 바뀌었지만 그뿐이다. 마치 곰돌이 젤리를 만드는 기계에 맛이 다른 재료만 주입해서 딸기맛 곰돌이 젤리, 오렌지맛 곰돌이 젤리, 포도맛 곰돌이 젤리를 찍어내는 기분이랄까? 여기에 더해 서사의 디테일은 오히려 떨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어느 순간 이야기는 거침없이 팽창하는데 설명은 부족하다 보니 소위 떡밥 회수는커녕 힘겹게 지켜내던 개연성마저 내팽개치고 '아무렴 어떠냐'식 결말이 지어지는 점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젤리


결론적으로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장점을 더 크게 느끼며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면 단점이 더 크게 보일 확률이 높은 영화다. 물론 맛만 있다면 다양한 맛의 곰돌이 젤리를 계속 먹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만 이쯤 되니 신카이 마코토가 양파맛 비스킷은 만들 수 없는 사람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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