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삶을 살아내는 자세

column review

by 정세현

Intro

밀정은 명실상부히 9월의 기대작 중 한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신작이기도 하면서 근현대사의 시대적 배경까지 필자에게는 꽤나 오래 기다려왔던 작품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기다림은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다.


송강호, 충무로의 마스터키

애당초에 스스로 비슷한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꺼린다고 밝혔던 송강호, 동네 건달부터 경찰, 조폭, 신부, 왕 그리고 이번엔 고뇌하는 일본 순사까지. 송강호가 배역을 입는 것이 아니다. 배역이 송강호를 입는다. 밀정에서 연기하는 그의 눈빛이 긴장감을 만들고 그의 표정은 곧 서사다.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고 생각이고 결정이다. 일제강점기라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그의 삶을 살아내는 자세, 송강호가 보여주는 것이 곧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감독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걸 송강호가 이미 보여줬기에.

ㅁ.jpg 마스터,


김지운, 상업적 '예술'을 선보이다

그가 거장이라는 사실에 반기를 들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거장이라면 모름지기 영화에서 자신의 냄새를 풍길 줄 아는 법. 밀정은 김지운의 냄새로 가득한 영화다. 약간 바랜 듯 한 느낌,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디테일과 색감. 미술팀의 작업은 아래 카테고리에서 별도로 말하겠지만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그리고 약간은 80년대 인 듯 넘어가는 화면 전환. 그 모든 것들이 따로 보면 촌스러운 것 같다가도 하나로 어울려 예술이 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게 감독이지 싶다. 김지운은 그렇게 영화가 왜 상업적 '예술' 인지를 증명한다.

d.jpg 거장,


공유, 그리고 배우들

밀정에서 공유의 역할은 상당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송강호와 함께 극의 흐름을 책임지는 공유는 확실히 최근 출연작 부산행 보다는 좋은 배역 소화율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스크린 위의 공유가 어색하다. 뭔가 CF와 영화 그 어디쯤의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 한편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는 실로 대단한 포스를 풍기며 극 중반의 톤 앤 매너를 쥐고 흔든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이제는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이병헌의 카메오 출연은 그와 수차례 작업한 김지운의 영화이기에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충무로가 가장 사랑하는 남배우 중 한 명답게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의 무게감은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몇 안 되는 여자 출연자인 한지민은 비교적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영화가 다채로운 색감을 가지도록 돕는다.

dd.jpg 배우들,


미술팀, 만점짜리 작업

과거가 배경인 영화에서 가장 핀트가 깨지는 순간은 어설프게 작업된 CG, 그리고 적당히 작업된 소품과 배경이다. 아무리 이야기가 좋고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도 미술팀의 작업이 엉망이라면 관객들은 2시간 동안 영화에 전혀 몰입하지 못한다. 밀정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미술팀의 만점짜리 작업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 영화가 일제강점기, 경성과 상해 배경의 영화라는 사실을 특별히 인지하지 못했다. 인지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그만큼 몰입했다는 것이고, 몰입했다는 얘기는 그만큼 자연스러웠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물들의 복장, 그리고 세세한 소품들까지 밀정의 미술팀은 영화 완성도의 큰 부분이다.

a.jpg 만점,


결론, 괜찮은 영화 그 이상

결론적으로 밀정은 괜찮은 영화 그 이상이다. 물론 기승전결이 요동치며 영화가 끝날 즈음엔 집중도가 조금 떨어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나려나 하면서 다시 흐름을 이어 갈 때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노련하게 서사를 요리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송강호가 관객들의 집중력을 움켜쥔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하는 미술팀의 작업과 카메오들의 출연은 밀정을 좋은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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