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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n 15. 2023

플래시, 돌아온 탕자

column review

Intro

신약성경에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먼 곳에서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에서 노예살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는 이미 멀리에서 탕자가 보일 때 뛰어가서 안아준다. 제대로 된 DC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이 이 아버지와 같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그 탕자가 돌아왔다.


돌아온 액션

옆집 마블과 달리 아득히 인간을 뛰어넘은 캐릭터들의 강함 때문인지, 혹은 단순히 감독들의 연출력 부족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선 DC유니버스의 액션은 어딘지 모르게 유치하고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플래시의 빠르게 달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연출 또한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같은 능력이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퀄리티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플래시>는 '빠르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재미를 창출해 낸다. '능력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할 때 히어로 액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여기에 다채롭게 등장하는 조연들과의 합동 액션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액션의 틀을 적당히 비틀어 화면 안에 숨구멍을 뚫어준다.

액션


돌아온 서사

엄마 이름이 같음으로써 전진하는 DC유니버스의 서사는 그 자체로 레전드가 되었다. DC유니버스가 펼치는 이야기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옆집에 비하기는커녕 한 편의 팝콘무비로서도 끔찍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플래시>는 이 부분에서 가장 놀랍고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다. <플래시>에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무겁고 지리한 전제는 없다. <플래시>는 배리 엘런의 가장 개인적이고도 사적인 욕망을 파고든다. 많은 관객들은 히어로 영화가 말하는 소위 '대의'의 벙벙함에 지쳤다. 정의와 권선징악은 분명히 의미 있는 가치이지만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파고들만한 주제로서는 너무 닳았고 무뎌졌다. <플래시>는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가장 날카로운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어떤 경우에 '공감'은 많은 것을 덮는다. 그리고 전진시킨다. 나는 이번 영화에서 배리 엘런의 마음과 결정에 공감했다.

서사


돌아온 재미

결국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재미'라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영화를 120분씩이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건 시간이 곧 금인 시대에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영화를 학구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재미없는 영화를 돈 주고 봐야 할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플래시>가 액션과 이야기를 되찾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재미'를 되찾았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사생활에 말이 많았던 에즈라 밀러의 1인 2역 연기도,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컴백도, 사샤 카에의 슈퍼걸 역할도 어떤 요소 하나 튀지 않고 '재미'를 위해 아름답게 섞여 들어간다.

재미


돌아온 탕자

결론적으로 <플래시>는 DC유니버스의 방향성을 바꾸는 탕자로 불릴 만하다. 물론 마냥 덮어놓고 찬양할 만큼 이 영화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꽤나 매끄럽게 다듬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설정도 있고 편의상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수 있다. 1차적으로는 탕자가 돌아왔다는 것에 기쁘고, 2차적으로는 이제 돌아왔으니 잘 커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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