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구름 Jul 19. 2023

비밀의 언덕, 응원하고 싶은 떡잎

fresh review

떡잎은 씨앗에서 갓 태어난 싹이다. 그렇기에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완벽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이지은 감독의 데뷔작인 <비밀의 언덕>도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아쉬운 영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가능성을 응원하고 싶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의 시선을 따라가는 <비밀의 언덕>은 122분 동안 주인공 명은의 고민과 결정, 기쁨과 고통을 알차게 담아낸다. 영화가 매우 개인적인 서사에 집중할 뿐 아니라 기승전결이 완만한 구조여서 주연인 문승아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은 특히 더 빛난다.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을 끌고 가는 방식은 다소 투박하긴 해도 나름 신선하고 스릴 있다. 다양성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아도 96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 치고는 화면에 이렇다 할 허점을 남기지 않은 미술팀의 실력도 칭찬할 만하다. 무엇보다 강렬한 클라이막스 없이 삼삼한 결말로 전하는 이지은 감독의 메시지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평양냉면처럼 스며드는 맛이 있어 계속 생각난다.

문승아 배우


하지만 디테일로 들어가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집중하는 인물이 명확한 것에 비해 등장하는 인물이 많다 보니 명은의 주변 인물들은 명은의 이야기를 위해 사용되기만 할 뿐 개성 있는 캐릭터로 승화되지 못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서사의 강줄기가 너무 격하게 바뀌는 지점이 많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서는 주연인 명은의 감정선마저 뜬금없을 정도로 요동쳐서 흐름을 따라가던 관객들은 부드럽게 코너를 돌지 못하고 한 번씩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은 일어나는 사건에 비해 매듭지어지는 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야기는 어찌저찌 종점을 향해 흐르고 분명히 의미 있는 결말에 도착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이벤트들은 애매하게 버려지거나 결말을 위한 땔감 이상으로 사용되지 못하다 보니 영화가 끝났을 때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남는다.

아쉬움


결론적으로 <비밀의 언덕>은 분명히 응원하고 싶은 지점이 풍성한 떡잎이다. 하지만 모든 떡잎들이 그렇듯 아직 튼튼한 줄기나 디테일한 아름다움을 갖췄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당장 이 영화를 누구에게나 추천하긴 쉽지 않겠지만 이지은 감독의 다음 작품, 또 그다음 작품은 점점 더 아름다움을 더해가기를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응원하고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 땀 냄새가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