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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Aug 09.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질문하는 재난영화

fresh review

큰 제작비가 투입된 재난영화라 하면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액션과 스릴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명석한 과학자거나 육체적인 강인함을 지닌 인물들이 차지하곤 한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재난이 있을 뿐 액션은 없다.


재난은 재난일 뿐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야기에는 위험한 지역을 뚫고 도착해야 할 목적지도,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영웅적 주인공도 부재하다. 영화를 채우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법한 아파트 주민들이다. 등장인물들의 유일한 목적은 그저 '살아남는'것이다. 공간이 한정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에 몰입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럽다. 재난이 일어나는 과정을 굳이 디테일하게 담아내지 않은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병헌의 존재감은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를 찢어버릴 만큼 압도적이다. 이야기의 목적지가 없어 서사의 힘이 부칠 때 이병헌의 눈빛과 대사는 영화를 들쳐 업는다. 앞으로 걷는다. 내가 감독이라면 촬영장에 어떤 재난이 와도 이병헌이 있어서 어떻게든 되겠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존재감


아마도 엄태화 감독은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그 모든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맴돈다. 그리고 감독이 내놓은 영화의 결말을 수긍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이병헌에 비해 다른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에 그친다. 특히 박서준과 박보영은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존재감이 약하고, 배경 환경이 극단적인 것에 비해 영화의 분기점을 만드는 사건들의 임팩트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 보니 흥미롭다고 할만한 지점이 충분치 않다. 서사에 허점은 없지만 허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렇다 할 도전도 하지 않은 느낌이다.

아쉬움


결론적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라는 극한 환경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영화다. 이병헌의 훌륭한 연기도, 나름의 메시지도 잘 전해진다. 다만 벌려놓은 판에 비해서 풍성하게 누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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