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구름 Oct 20. 2023

플라워 킬링 문, 서부에서 듣는 훈화 말씀

fresh review

초등학생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운동장에 전교생이 줄을 맞춰 서 있고 교장선생님이 근엄한 얼굴로 강단에 올라와 훈화 말씀을 하시곤 했다. 훈화 말씀의 첫 번째 특징은 그 내용이 훌륭하고 새겨들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영화를 만들면 그 영화의 품격이 떨어지긴 어렵다. 한 명은 연출에, 두 명은 연기에 도가 틀 대로 튼 사람들이니 아이폰 카메라를 세워두고 잡담만 떨어도 영화 한 편은 뚝딱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그 사람들이 모여서 본인들이 잘 하는 걸 잘 하는 영화다. 무려 206분이나 되는 러닝타임 동안 화면이 불편한 순간은 없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의 연기도 준수하며 90년대 서부마을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미술팀의 작업도 놀랍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큰 제작비가 들어간 <플라워 킬링 문>은 2,700억 원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한 시대 전체를 화면에 끌고 온 기분이다.

배우들


시각적 완성도와 연기의 수준이 뛰어난 것과 별개로 영화가 이 기나긴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과 다르지 않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도 알겠고 그 얘기가 좋은 얘기라는 것도 너무나 알겠다. 하지만 영화는 살인극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도 기승전결의 리듬감도 없이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다. 교장선생님이 자신의 얘기를 듣는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듯 <플라워 킬링 문>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그다지 관객을 고려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의 200분짜리 연기 모음집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한 편의 영화로서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기는 쉽지 않다.

훈화 말씀


결론적으로 <플라워 킬링 문>은 서부를 배경으로 한 훈화 말씀이다. 주연배우 두 명의 팬으로서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관람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어보라고 굳이 추천해 주지 않듯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도 썩 끌리지는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박사의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뼈대는 튼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