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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Oct 31.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일기는 일기장에

fresh review

거장은 이미 이룬 것들로 인해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작품에 대한 평가까지 좌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크게 실망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업적과 명성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만든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첫 화면이 펼쳐질 때부터 기대의 일부는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익숙하고 따뜻한 그림체를 보는 순간 거장이 복귀했다는 일종의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귀여운 생명체들이 가득한 판타지 세상은 여러 번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여기까지다.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 정도가 내가 찾아낸 이 작품의 미덕이다.

미덕


내가 생각할 때 이 영화에 없는 것은 네 가지다. 재미도, 감동도, 메시지도, 설득력도 없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0에 수렴하는 설득력을 선보이며 어떤 관객도 설득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인물, 대사, 세상, 건축물, 생명체까지 어느 것 하나 설득되지 않는다.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관객을 생각하는 구석이 없다는 말이다. 영화 속 판타지 세계는 완벽히 베타적이고 불친절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124분 동안 어느 것 하나 설득되지 않는 영화를 무슨 재미로, 어떤 감동을 받으며 봐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실망


결론적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일기장의 영화적 구현이라고 밖에는 추측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의 일기든 봐줄 마음이 충분하지만 이토록 설득력 없는 일기라면 일기장에 적어두고 고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관람료를 내고 누군가의 일기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부여해야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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