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구름 Nov 23. 2023

서울의 봄,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

column review

Intro

가수 권진아의 노래 중에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에 대한 가사를 담은 노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이 노래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서.


연기 바보, 황정민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항상 양날의 검과 같다. 따라 할 대상에 있기에 수월하면서도, 그 사람이 아닌 내가 그 사람이라고 관객들을 설득해야 하기에 어렵다. 이성민, 김성균, 정우성 등 중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만큼 <서울의 봄>이 선보이는 인물들의 설득력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황정민의 전두광이 관객들을 확실하게 설득하지 못했다면 나머지 인물들이 충분히 힘을 받았을지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그만큼 황정민의 연기는 진심이다. 황정민이 전두광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그의 연기에 만족스럽게 설득되었다. 그가 누구를 닮았고 안 닮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그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황정민


연출 바보, 김성수

김성수 감독의 연출은 자비가 없다. 영화가 두 시간이 넘어가면 구구절절한 부분도 생길법한데 김성수 감독은 쳐내야 할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비추는 장소와 사람은 많지만 서사가 토막 난다는 느낌은 없다. 마치 예리한 칼날로 관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칼집을 내놓은 것처럼 수많은 편집점들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과감한 전개와 날카로운 편집점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몇몇 장면에서는 내가 한국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주먹을 꽉 쥐어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쫄깃한 순간도 있었다.

김성수


이야기 바보, 한국 근현대사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보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욕먹을'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영화로 만들어도 욕먹을 실화가 도처에 널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본과 각색의 힘은 필요했겠지만 이런 일이 실화라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슬펐다. 더불어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역사 고증이 생각보다 높은 퍼센티지로 되어있어서 한 번 더 놀랐다. <서울의 봄>에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전두광이었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에 감정을 이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배경은 1979년이지만 이태신을 통해 전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2023년인 지금도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메시지


진심이었던 바보들에게

결론적으로 <서울의 봄>은 연기, 연출, 메시지가 잘 어우러진 드라마 영화다. 물론 모든 부분이 특출날 만큼 좋았던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밸런스 있는 실화 배경의 한국영화를 본 지도 꽤 오래인 것 같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요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끝났을 때 생각할 거리가 남았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나는 과연 나에게 맡겨진 일에, 기준과 약속에 진심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더 마블스, 고양이는 위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