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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Nov 30. 2023

괴물, 밀도 높은 영화

column review

Intro

밀도란 단위 부피당 질량의 값을 의미한다. 똑같이 120분짜리 영화를 보더라도 밀도가 높은 영화를 봤을 때의 만족도는 그렇지 않은 영화와 비교할 수 없다. <괴물>은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밀도가 높은 영화였다.


밀도 높은 서사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부피가 큰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를 할 때 특유의 장점이 발휘된다. <괴물>역시 겉으로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같은 질량이면 부피가 작을수록 밀도는 높아진다. 배경과 인물의 부피를 충실히 줄인 영화의 서사는 놀라울 만큼 높은 밀도를 선보인다. 시각을 달리하며 흐르는 서사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긴장감을 한순간도 내줄 생각이 없다.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가 한 방울 섞인 스릴러에 가까울 만큼 많은 장면은 손에 땀을 쥐고 바라봐야 한다. 일본 장인이 조립한 기계마냥 시간의 흐름에 맞춰 착착 맞아 들어가며 물음표를 던지고 회수하는 각본의 힘을 느끼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등장인물 옆에 내가 함께 서 있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크고 화려한 각본이 주는 설렘도 있겠지만 작아도 밀도 높은 각본이 주는 울림은 깊이 파고든다.

서사


밀도 높은 연출

아무리 이야기가 좋아도 표현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정된 공간을 분해하고 조각해서 매번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카메라는 끝없이 새로운 앵글을 찾아내고 맺어야 할 지점과 끊어야 할 지점은 날카롭게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영화는 힘주어 어떤 것을 주장하지도, 공들여 설득하지도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공감된다. 웃음도 나온다. 눈물도 흐른다. <괴물>이 보여주는 연출의 경험은 어쩌면 지금껏 클래식이라 불려온 영화들에 담겨있는 바로 그 경험이다. 밀도 높은 연출은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험시킨다.

연출


밀도 높은 연기

<괴물>은 영화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두 명의 어린 배우를 주연으로 선택했다. 이 두 명이 영화를 이끌었냐고 하면 그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다. 하지만 이 둘이 없었다면 영화가 온전히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꽤나 다양한 감정선의 연기,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해낸 주연 두 명의 연기는 충분히 준수했다. 더불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에도 출연했던 안도 사쿠라는 영화 초반부에 본인이 해줘야 할 몫을 넘치게 해냈고 나가야마 에이타나 그 외 중견배우들의 연기도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었다. 무엇보다 서사가 전진해야 하는 몇몇 장면에서 주연 두 명이 보여준 표정과 대사는 필요한 밀도를 충분히 넘기는 것이었다.

연기


밀도 높은 영화

결과적으로 <괴물>은 밀도 높은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중 <괴물>보다 감정이 더 건드려진 영화는 있었지만 서사와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이 영화의 밀도가 가장 높지 않았나 생각된다. 무엇보다 한동안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특유의 장점이 다소 깎여나간 듯 보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시 고향에서 본인의 색깔을 선명히 찾은 것 같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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