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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Dec 07. 2023

나폴레옹, 사랑과 전쟁

column review

Intro

나는 리들리 스콧이 정색하고 시대물을 만들 때만 나오는 영화의 쇠 맛 같은 것이 마음에 든다. <나폴레옹>은 오랜만에 그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사랑

<나폴레옹>은 아무리 봐도 전기물의 탈을 쓰고, 전쟁물의 옷을 입은 로맨스 영화다. 무엇보다 영화의 문법부터가 로맨스다.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을 이끄는 주제는 나폴레옹이 참전했던 전투나 그의 야망이 아니다. 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중 한 명인 나폴레옹조차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는 사실이 서사의 핵심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는 나폴레옹이 전쟁과 프랑스를 어떻게, 어디까지 사랑했는지에 집중한다. 서사의 핵심과 주변부가 모조리 사랑 얘기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사랑타령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시작점과 끝점에는 항상 사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의 설득이 꽤 그럴듯했다.

사랑


사랑하는 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는 호아킨 피닉스의 존재감은 단단하다. 실제 나폴레옹을 눈앞에서 봤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는 혼자 있을 때도, 수많은 배우 사이에 있을 때도, 눈부시게 매혹적인 바네사 커비와 함께일 때도 관객들의 모든 눈길을 빨아들인다. 매력이라고 하기엔 건조하고, 카리스마라 하기엔 투박한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그를 맴돈다. 158분이나 되는 영화의 러닝타임 중간중간 영화가 동력을 잃으려 할 때면 그의 대사와 눈빛이 늘어지려는 서사에 긴장감을 더한다. 나폴레옹의 생애 중 영화가 선택적인 사건들을 보여주며 시간을 뛰어넘기에 일부 구간에서는 이야기의 연결성이 부족한데 호아킨 피닉스의 존재감이 비어있는 이야기들 사이의 다리가 된다.

호아킨 피닉스


전쟁

<나폴레옹>이 비록 로맨스 영화일지라도 전쟁 장면의 양과 질은 결코 낮지 않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쟁씬에서 '사실 이게 내 필살기야'라고 말하듯 본인의 실력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다양한 배경과 계절에 벌어지는 전쟁씬은 사실적인 것은 물론이고 웅장한데 깔끔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영화는 보여주고 싶은 건 보여주면서 15세이상 관람가 기준은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묘기까지 선보인다. 다만 대규모 전쟁씬에 비해서 나폴레옹이 삶에서 겪은 크고 작은 전쟁들은 관객들의 마음까지 닿기에 힘이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말했듯 서사에 빈 공간이 존재하고 많은 인물이 등장하다 보니 미술팀의 작업이나 화면 자체는 출중한 퀄리티를 선보이지만 나폴레옹의 삶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든 장면에서 넉넉히 설득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


한 남자의 사랑과 전쟁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의 사랑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전체가 강한 흡인력을 가지거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입지전적 인물을 신격화하거나 닿지 못할 인물로 그리지 않고 깊이 있게 표현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영화의 연출은 충분히 관람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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