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코로나 이전 한국 영화산업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국내 박스오피스는 총관객 5,500만이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3년에 영화관에서 관람한 30여 편의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5편의 영화를 개봉일 순으로 소개해본다.
유명 배우가 여럿 나오는 캐릭터버스터형 영화나 배우 두 명이서 투닥거리는 버디무비도 재미있지만 단독 주연 한 명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영화를 보는 재미는 특별하다. <타르>는 마치 케이트 블란쳇의 차력쇼를 보는 느낌이다. 이 배우가 단순히 본인의 배역을 잘 소화하는 걸 넘어서 서사와 연출까지 들쳐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경험은 꽤나 특별했다.
내가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이기에 이 리스트에 <파벨만스>가 뽑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좋아하는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푸는 영화를 보는 팬의 마음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팬심으로 이 영화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은 것은 절대 아니다. 거장의 품격이 느껴지는 연출과 서사는 어떤 관객에게든 충분히 훌륭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2022년에 영화관을 가야 할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준 영화가 <탑건: 매버릭>이었다면 2023년에 적어도 나에게 그 이유를 증명해 준 영화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였다. 전편보다 모든 면에서 진일보한 이 영화는 영화관에 앉아있는 시간이 마치 놀이동산처럼 느껴지는 시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요소 하나하나를 때 놓고 보면 모든 면에서 최고는 아니었을지라도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면에서는 올해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 중 하나였다.
몇 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범죄도시>시리즈의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서울의 봄>이 보여준 존재감은 2023년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 2023년 최고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준수한 포텐을 보여주던 감독과 충무로의 중견 배우들이 한국의 근현대사 장르물로 상당히 재미있고 관객들의 호응까지 이끌어낸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서울의 봄>을 선정하고 싶다.
앞선 영화들로도 언급했듯 영화가 줄 수 있는 경험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2023년에 만난 영화 중 가장 밀도 높은 경험을 선사한 영화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괴물>이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증명했다면 <괴물>은 우리가 여전히 영화를 찾는 이유를 증명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2022년에 썼던 최고의 영화 5선 글을 보니 마스크를 벗고 싶다는 바람이 눈에 띈다. 이제 영화관에서 마스크는 벗게 되었으니 2024년엔 더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더 많은 관객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