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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미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미쳐버리면 예술이 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은 모든 면에서 후자에 해당한다.
나는 원래도 이 배우를 사랑했지만 <가여운 것들>을 본 이후에는 존경하게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 엠마 스톤이 보여준 연기는 내 부족한 어휘로 표현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그녀는 온몸을 내던졌고 모든 것을 불살랐으며 말 그대로 미쳐버렸다. 이 영화의 우수함이나 완성도와 별개로 엠마 스톤의 연기는 독립된 하나의 경지다. 내가 평생토록 본 영화 중에 이토록 단 한 명의 주연 배우가 영화 전체를 압도적으로 점유한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 <가여운 것들>을 봐야 하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질문이 뇌까지 닿기도 전에 엠마 스톤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뭐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엠마 스톤의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요소가 나빠서가 아니라 엠마 스톤의 연기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미쳐버렸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미술팀의 작업이 엉성하거나 형편없는 영화는 아무리 좋은 연기와 스토리가 있어도 몰입이 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영화는 간접경험을 선사하는 콘텐츠인 만큼 2시간 동안 관객들이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미술 작업이 필요하다. <가여운 것들>의 배경과 소품, 인테리어와 의상은 이 독특하고 기괴한 세상 속에 내가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영화를 보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고 하면 웬만해선 좋은 평가이기 어렵겠지만 이 경우엔 극찬이 아닐까 생각된다. 141분 동안 이 끔찍하게 아름다운 악몽 속을 마구 여행하고 나온다면 토가 쏠리는 것이 어떤 면에선 지당하다.
고백부터 하자면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어한 표현은 더더욱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똘끼는 이성적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미쳐버린 감독의 전작들을 보고 몸서리쳤으면서도 이번엔 또 어떤 미친 짓을 해놨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가여운 것들>에서 기어이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방식은 특이점에 다다른 것 같다. 분명히 내가 재미를 느끼는 방식의 영화가 아님에도 러닝타임 내내 '맙소사', '미쳤네'를 연발하며 탄성을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기분이 나쁜데 한편으론 쾌감이 있다. 여전히 그의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의 영화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벨라 벡스터의 미쳐버린 모험담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대단한 경험이다. 한 번 더 보고 싶냐고 물으면 아닌 것 같은데 보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은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경험은 인생에 여러 번 할 만하진 않지만 한 번은 꼭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이 영화가 그런 경험이다.